한 지역방송국 기자는 전입을 오자마자 황당한 일을 당했다. 윗선에서 골프부킹을 전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 골프를 전혀 치지 않던 이 기자는 부킹을 전담하는 기자가 따로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얼마 뒤 더욱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한 골프장 회원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중요한 골프접대를 해야 하는데 부킹이 어려우니 대신 힘좀 써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기자는 “그때서야 기자들이 얼마나 골프장에 자주 가는지, 회원들 눈에 비친 기자들의 모습은 또 어떨지 알게 됐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정치부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반장이 골프약속이 있다고 했다. 골프장에 도착해보니 각 사 반장들과 기자들은 물론 전직 정치부 기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부킹은 물론이고 모든 비용을 당에서 부담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느새 기자와 골프는 매우 가까운 개념이 돼버렸다. 특혜골프 시비에는 늘 언론인의 이름이 나오고 골프관행 역시 그대로다. 취재원으로부터의 골프접대는 물론이고 부킹청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소위 ‘골프특혜’와 관련, 언론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지난 98년 무렵부터. 박세리 효과를 타고 골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때와 궤를 같이 한다. 당시 기자들의 골프입문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접대골프, 근무중 골프 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자 연합, 중앙, 한국, KBS 등 일부 언론사는 골프접대를 금지시키는 사내규정을 마련했으며 국세청 등 일부 출입처 기자들 사이에서 자정운동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LPGA와 PGA에 한국선수들이 속속 진출하고 그들의 게임이 생중계로 방송되는 요즘, 기자들 사이에서 골프에 대한 문제의식이 옅어진 것이 사실.
기자들 사이에는 ‘골프 예찬론’을 펴는 마니아들도 적지않다.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의 말. “처음엔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아예 나랑은 안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취재원과 함께 필드에 나가니 실은 없고 득만 많은게 골프더라” 이 기자는 필드에 나가지 않는 날은 평소 팀을 이루는 기자들과 함께 퍼블릭에 간다고 말했다.
다른 일간지 사회부 기자는 취재원 관리차원에서 골프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골프는 취재원이 나에게 하루 시간을 온전히내주는 것이다. 운동하고, 맥주 마시고, 사우나 가고 저녁먹을때까지 ‘밀착’할 수 있다. 고급 취재원을 만나 사귀려면 백번 술먹는 것보다 한번 골프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이는 데스크가 기자들에게 골프를 권유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주간지 기자는 “왜 주말에 골프를 치지 않느냐는 데스크의 꾸중을 들을때가 가장 스트레스 쌓인다”면서 “사내에서 골프를 치는 기자와 그렇지 않은 기자 사이에 묘한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역시 기자들의 골프문화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공짜접대 관행때문이다. 골프는 보통 4명이 1팀을 이루며 라운딩을 하게 되는데 한 명당 20-25만원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물론 회원부킹이 됐을 경우다.
골프관행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역시 정치권과 기업체. 골프장의 최대고객 중 한명이 국회의원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기업체 고위간부들이기 때문이다. 8년간 정당을 출입했던 한 일간지 기자는 “골프를 즐기는 반장들이 당직자들에게 제의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부킹을 청탁하고 기자들끼리 가서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당에서 골프부킹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만 모이면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자신도 얼떨결에 2번 따라가본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으며 “골프를 즐기는 기자들은 당 출입기자들 사이에 ‘그들만의 이너서클’을 형성한다. 취미가 아닌 특권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지역 경기 광주소재 모 골프장에서 발생한 기자 폭행사태에 모 지역 일간지 기자가 가담해 구속된 뒤 경기도청에는 “부킹청탁 절대사절”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그러나 일년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부킹전담 창구가 예전보다 붐비지는 않지만 언론사 기자들의 부킹청탁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 경기도 한 일간지 차장은 “도청에 접수되는 청탁건수가 줄은 건 분명 사실이지만 음성적으로 언론이 부킹을 요구하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면서 “언론사 간부나 기자들이 개인 골프를 위해 부킹을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관행으로 굳어진 골프특혜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한다는 지적이 기자들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방송국 편집부 기자는“편집국에서 하루종일 틀어놓는 채널이 3개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YTN CNN 다른 하나가 골프채널”이라면서 “기자가 골프를 즐기는 특권계층의 하나로 아예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골프접대는 명백한 촌지인데 돈을 받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고 접대를 받으면 괜찮다는 자의적인 인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데스크에 오르기까지 단 한번도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는 한 일간지 사회부 차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골프는 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굉장한 특권의식을 느끼게 하는 운동인데, 그런 골프를 접대받는 사람들이 기자여서야 되겠느냐. 골프를 치면 눈높이가 올라가는 만큼 기자정신이 이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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