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청소년 보호 외면 ‘눈쌀’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또다시 문제점을 노출했다.
지난 11일 일부 신문 인터넷판과 12일 조간에는 “30대 직장인이 여중생을 납치해 키워서 결혼하려 하다가 학생이 탈출해 범인이 잡혔다”는 내용의 사건기사가 실렸다. 사실 이 사건은 한 달 이상 지난 사건인데 관할 경찰서 출입기자들이 강력반 사무실에 있던 사건자료를 입수하면서 보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언론은 보도과정에서 범인 소재지를 기재하고 피해자의 이니셜 및 성을 기재하는 등 피해 청소년 보호와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여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곳은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지난 11일 오후 6시경 이 사건을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했으며 이후 각 포털 등 뉴스사이트를 통해 퍼졌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여중생 납치감금 엽기범죄’라는 기사를 보도하며 범인의 주소를 동까지 표시해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에 처한 것. 인터넷 포털의 뉴스사이트를 통해 우연히 이 기사를 읽은 피해자 담임선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한국일보에 연락, 본판 기사는 수정했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기사가 퍼진 후였다. 한국일보는 이튿날 “이 사건의 여중생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성폭력 예방도 부실하지만, 사후의 피해자 보호와 상처 치유노력도 그만큼 소홀하다”는 내용의 사설을 썼지만 이미 ‘특별한 보호’가 힘들어진 뒤였다.
다른 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앙일보 역시 범행장소와 범인·피해학생의 성을 구체적으로 밝혔으며 대부분의 언론이 피해자 학생의 실명을 이니셜 처리했다.
사건 이후 학업에 열중하며 적응해가던 피해학생은 언론보도로 인해 신원이 밝혀지자 또다른 충격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피해학생의 부모는 관할경찰서를 찾아가 강력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지난 15일 각 언론사 편집국장과 보도국장 앞으로 공문을 보내 “향후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기사화하는 경우 피해 청소년의 인적사항을 기재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자들에 대한 교육을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이경은 선도보호과장은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던 학생은 최근 이 일을 극복하고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언론으로부터 또 다른 피해를 입게 됐다”면서 “이같은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는언론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 기사에 대한 정보보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4항에는 “대상 청소년 및 피해 청소년의 주소·성명·연령·학교 또는 기타 이들을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신문 등에 게재하거나 방송매체를 통해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조 제6항에는 “이를 위반한 신문의 편집인·발행인 또는 그 종사자, 방송사의 편집책임자와 발행인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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