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경원하 박사 관련 사실확인 고충
외신 의존도 높은 국내 언론현실 보여줘
“답답하다.”
지난 19일 호주의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언’ 주말판이 보도한 ‘북 핵과학자 경원하 박사 외 20명 망명설’을 후속 취재한 국내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반응이다. 북한과 관련한 외신은 보통 미국이나 영국에서 나온 전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다소 생소한 호주의 일간지에서 보도해 접근 및 확인 등 ‘초기대응’이 여의치 않았고 미국, 한국, 북한이 이번 사건에 시원스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 오스트레일리언’은 지난 19일 “경 박사와 고위급 군인 등 20여명이 미국의 주도 아래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 등이 연루된 비밀공작을 통해 미국과 그 동맹국으로 망명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의 정보기관 외에 나우루, 뉴질랜드, 타이, 필리핀, 스페인 등 11개국 개입 △워싱턴의 미국인 변호사가 나우루의 협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나우루 전 대통령에게 발송 등 사실 정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 이후 각 언론사들은 각국에 나가있는 특파원과 국제부 기자, 통일부 출입기자 및 각종 채널을 이용해 이에 대한 확인작업을 벌였지만 지난 20일 영국의 ‘더 타임스’가 한 소식통을 인용해 “경 박사가 워싱턴에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 외에 확실한 ‘후속’을 이어가지 못했다.
때문에 보도 이후 언론은 경 박사가 재임했던 춘천 강원대학교 등을 수소문해 당시 사진 및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었으나 북핵과 관련한 뚜렷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 발언자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도 해 각 언론별로 경 박사의 핵개발 가담 정도를 추측하는데 있어 다소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디 오스트레일리언’의 보도 자체를 확인하는 것도 기자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족제비 작전’의 핵심인물인 미국 변호사 필립 개그너와 연락이 두절됐고 해당기사를 작성한 마틴 추로브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역시 보도 이외의 내용을 얻지는 못했다.
이 와중에 허바드 주한 미대사의 발언마저 기자들의 애를 태웠다. 허바드 대사는 지난 21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망명설에 대한)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가 이후 기자들에게 “기사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고 보도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라는 부연설명을 전달하는 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을취하기도 했다.
통일부 한 출입기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상세한 최초보도가 나갔는데도 다른 사안에 비해 확인이 훨씬 힘들었고 미국과 정부쪽의 확실한 입장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확인이 아예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미리 못박은 기자들이 많았고 베이징 회담과 북 핵보유 발언 등 굵직한 사안이 이어지면서 기사가치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러나 북한 뉴스의 외신의존도가 높고 확인절차 역시 각 언론사별로 엇비슷한 우리 언론의 현실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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