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세계 김용출 기자, 뇌성마비 장애인 최옥란씨 삶·죽음 조명
최옥란.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자 노점상이었던 그녀는 지난해 3월 26일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남긴 채 과산화수소 두 병과 수면제 20알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정지시켰다.
무관심과 소외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일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잠시뿐 최씨의 죽음은 화석화된 이미지만 남긴 채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한 기자의 집념과 노력으로 최씨는 죽음 1년만에 부활했다.
세계일보 정치부 김용출 기자는 장애인의 날에 즈음한 지난 14일 <최옥란 평전-시대를 울린 여자>를 펴냈다. 김 기자는 이 책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이었고 여성이었고 어머니였고 노점상이었던’ 최씨의 삶을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라며 그녀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눈물과 고통, 음모와 배신 등 인생 역정을 기록했다. 8개월 동안 최씨의 인생을 쫓아 다녔던 김 기자는 그러나 최씨와는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관계였으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그리 깊지 않았다. 다만 취재원의 반강요(?)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해 회비를 내온 것이 고작이었다.
김 기자가 ‘죽은’ 최씨를 처음 만난 것은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지난해 6월. 당시 그는 체육부 소속으로 한창 뜨거웠던 월드컵 열기를 취재하느라 밤낮이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우편물을 살피는데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함께 걸음’ 이라는 소식지에 눈길이 멈추더군요. 최씨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식지의 기사를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죠. ‘내가 최옥란의 삶을 되살려보겠다’고 말입니다.”
김 기자는 “당시에는 내가 그녀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쓰다보니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남기려고 했고 또 그것을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인생을 더듬겠다는 결심은 바로 실행되지 못했다. 월드컵 열기가 워낙 뜨거웠던 데다 한국팀의 ‘4강 여진’으로 7월말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말부터 김 기자는 본격적으로 최씨의 삶을 쫓았다. 주말이면 녹음기와 사진기를 메고 부모, 친구, 친지, 동료장애인 등 최씨와 관계했던 사람이면 닥치는 대로 만나러 다녔고 매일 밤 신문작업이 마무리되면 그녀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그가모은 90분용 테이프 16개, 3000여쪽에 달하는 자료를 통해 최씨의 삶은 그 조각이 서서히 맞춰질 수 있었다. 그러기를 8개월. 김 기자는 슬픈 가족사, 장애와 편견, 좌절된 배움 등 그녀의 인생을 복원하며 더불어 그녀를 소외시켰던 사회의 치부를 들춰냈다. 조영래가 전태일을 살려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 것처럼 최옥란은 김용출로 인해 비로소 그녀의 응어리진 삶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곧 책을 들고 최씨를 찾을 예정이라는 김 기자는 책 말미에 자신을 반성하면서 최씨에게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최옥란, 당신의 삶을 더듬으면서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습니다. 눈물을 주고 그래서 기쁨을 준 당신. 이제 편히 눈감으시라”
전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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