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입보다는 귀를 열자

-2002년을 보내며

'독자들 꿈은 이뤘나요?’

26일치 한 신문의 칼럼 제목이다. 우리는 정말 말많고 탈많았던 언론 동네의 2002년을 돌아보며 비슷한 질문을 던져본다. ‘언론과 언론인들 꿈은 이뤘나요?’

한해를 돌아보는 데는 잘못된 것을 먼저 꼬집는 방법이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 최근 발표한 ‘나쁜 보도 10선’을 돌아보면 그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정도를 뛰어넘어 우리 언론 언저리의 치명적 오류와 한계를 한몫에 짚어내는 맥락이 있다.

민주당 국민경선제가 참여정치를 한단계 진전시켰음에도 특정 후보의 음모론에 무게를 실은 것,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정치권 공방 중계에 치중하고 사생활 의혹 부각을 통해 초점을 흐린 일,‘악의 축’에 편승해 북한 위협론을 강조하며 위기를 부채질한 일, 여중생 사망 사건을 5개월 가까이 방관했다가 뒤늦게 반미정서 운운하며 사대주의적으로 비판한 일, 친일파 명단 발표에 대해 공정성을 시비한 일, 서해교전과 북한의 핵위협을 빌미로 햇볕정책 폐기를 노골적으로 주장한 일, 일부 언론의 노골적인 대통령 만들기, 밀어붙이기식 공기업 민영화 논리에 편승한 반노동자적 보도 태도 등이다.

그 맥은 독자와 국민을 읽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압권은 물론 좌절로 막을 내린 대통령 만들기 ‘노름’. 절정을 이룬 한 신문의 사설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국민들이 (그 신문을) 버렸다”는 환호와 감격으로 뒤바뀌었다.

사실이 아니기를 정녕 바라지만 한 신문사 경영진이 털어놓았다는 ‘5년 더 고생’ 발언의 뒷꺼풀에 숨어있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과 국민과 역사를 깔보는 오만함을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언론사 세무조사를 관통하며 신문시장과 여론의 독점 현상이 되레 깊고 넓어져 이른바 ‘조중동’이 그 권능에 취해, 변화하는 정치 패러다임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민과 역사는 그만큼 뚜벅뚜벅 제 걸음을 옮긴 것 뿐인데 언론과 언론인은 정작 몰랐다고, 이토록 컸느냐고 흠칫 놀라고 있다.

한해를 돌아보면 우리 언론과 언론인들의 취재 시스템과 관행이 변혁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시점에서 아프게 되새길 수밖에 없다. 정치부 기자는 정치의 주인인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고 경제부 기자는 기업과 취재원의 품에서 벗어나 국민경제로 들어가야 하며 사회부 기자는 출입처를 떠나 오늘을 사는 이들의 삶에뛰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 대안매체의 효용성으로 언급되는 쌍방향, 참여, 멀티성을 기존 매체들이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론운동 측면에서도 반성할 점은 있다. 언론개혁의 외연(外延)을 넓힌 점은 평가받을만 하지만 세무조사 이후 극명하게 갈린 언론 진영의 ‘정반합’을 통해 내포(內包)를 다지는 일 또한 절실하다. 이 점에서 기자협회의 책임과 역할 또한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전거 일보’로 상징되는 신문 시장의 혼탁함은 여전하고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한 증면경쟁의 폐해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언론인 비리가 올해처럼 부각된 해도 없었다는 점을 또한 되새겨야 한다.

모든 세상 일은 독점하면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지난 19일 밤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를 돌아보며 언론과 언론인들이 새삼 내년에 새겼으면 하는 것은 ‘입보다는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국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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