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의 본격 시작과 끝, 장마의 시종(始終)은 태풍과 함께 여름철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올해 장마가 조금 특이하다. 지난 22일 기준으로 제주도는 장마철에 돌입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서울 등 내륙은 아직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정체전선 중에 하나인 장마전선에 있다.
기상학에서 장마는 차갑고 건조한 대륙고기압, 습기 많은 오호츠크해고기압과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 사이에 생기는 정체전선의 일종인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로 정의된다. 복잡하게 정의된 이 장마전선에 의해 비가 내려야만 비로소 그 지역은 장마 시작, 그 비가 바로 장맛비가 되는 것이다. 최근 상황을 학술적으로 본다면 장마전선이 올라와 비가 내린 제주의 경우 장마철에 본격 돌입했지만 내륙은 장마전선에 의한 비가 내리지 않고 소나기나 일반(?) 비만 내리고 있으니 날씨가 꿉꿉하고 강수가 있어도 장마 시작이 아닌 것이다.
반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장마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를 장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계절이 여름이 됐고 비가 많이 내리거나 특히 며칠에 걸쳐 온다면 사람들은 장마가 시작해 장맛비가 내린다고 여길 수 있다. 주변에서도 6월 들어 비가 자주 내리면서 “장마 시작한 것 맞지”라고 물어오는데 그때마다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장마의 종료 시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과거 2008년 8월 문화일보 <장마 끝난지 1주일 됐는데...“혹시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장마가 끝났음에도 기상청은 공식 발표 일정을 잡지 못했다. 자칫 장마전선이 다시 발생해 비가 내리면 오보가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 당시 장마전선이 사라진 뒤 전국적으로 호우특보가 내려지는 등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장마전선에 따른 비는 아니니까 장맛비는 아닌 건데 예보를 받는 국민 입장에선 당연히 장마로 생각할 수 있어 기상청이 크게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기상청은 지난 2009년부터 장마 시종 시점을 발표하지 않고 내리는 비가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여부만 예보하고 있다. 그러나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장마에 대한 논란과 혼란은 여전하다. ‘장마전선’ ‘기압골’과 같은 학술 용어가 날씨 예보문에 실려 여름철 비의 태생을 굳이 알려주기 때문인 듯하다. 덕분에 올해도 내륙에 내리는 비가 실제 장맛비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비인지, 어느 지역까지가 장마철에 돌입하는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장마 기간과 우기를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장마 예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장마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 봤으면 한다. 기상청과 국민 사이에 장마에 대한 개념 차이가 존재하고 요즘은 최장 열흘 동안 비가 내릴지 말지를 알 수 있는데 학술 발표도 아닌 예보문에서 장마란 표현이 필요한가 싶다. 장마전선에 의한 비나, 기압골에 의한 비나, 대기불안정에 따른 비나, 그냥 다 똑같은 여름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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