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 노인 된 기자들 보듬다

44년 만에 동아투위에 돌아와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할 때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지난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할 때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지난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의 깃발을 들고 일어서면서 편집국에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44년 만에 돌아왔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는 지난 24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4주년 기념식에서 족자를 공개했다. 족자는 긴 세월에 색이 누렇게 바랬지만 ‘자유언론실천선언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이라고 적힌 한자는 선명했다.


이젠 70대, 80대의 노인이 되어버린 기자들은 족자의 귀환을 반겼다. 그들의 표정에는 1974년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을 때의 떨림과 이듬해 1975년 3월17일 동아일보사에서 강제로 쫓겨난 이후 온갖 풍파를 겪었던 가시밭길의 흔적이 겹쳐졌다.



이 족자의 운명은 동아투위 위원들의 고달픈 생애만큼이나 기구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문 발표 현장을 지켰던 이 족자는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과 동아일보의 대량해고에 맞섰던 기자들과 함께 있었다. 1975년 3월17일 새벽 200명이 넘는 폭도들에 의해 길바닥으로 끌려 나오면서 들고 나온 것도 이 족자였다. 기자들은 곧바로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기나긴 싸움을 이어갔다. 이 족자는 동아투위 사무실에 걸렸다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투위 위원들은 중앙정보부가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미행, 취업방해, 연행과 구속 등 동아투위에 대한 탄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국정원에까지 족자 행방을 물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이 족자는 고 강정문 동아투위 위원 유족이 최근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은 “고 강정문 위원이 중앙정보부의 족자 압수를 피해 집에 감췄는데 병마에 시달리다 작고한 바람에 잊혀졌다”며 “강 위원이 ‘언젠가 자유로운 세상이 와서 저 족자가 빛을 볼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족자를 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투위는 이 족자를 지난 17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이 족자는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상징이자 보물”이라고 했다.


김성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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