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12일로 예정됐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공개한 지난 24일 밤, 언론사들은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방송사들은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특보에 돌입하는가 하면, 신문사들은 놀라운 소식을 지면에 넣기 위해 급히 판갈이 작업에 들어갔다.
심석태 SBS 보도본부장은 “야근할 때 누가 앵커를 하고 어떻게 특보를 할지 평소 매뉴얼에 따라 차분히 대처했다. 다른 방송사에 비해 인력이 적긴 하지만, 범위 안에서 최대한 막아내려고 하고 있다”며 “워싱턴특파원이 2명 뿐인데, 화상 뉴스를 대비하느라 피로가 집중되고 있다. 일반적인 대형 참사는 인원을 돌려서 순환근무 하면 되는데, 전문성을 요하는 부분이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일부 기자들에게 업무가 과중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사는 북미회담 중계를 위해 싱가포르의 현지 숙박과 스튜디오 등을 미리 계약해놓은 상태여서 난감해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출장을 앞두고 있거나 현지에 가있는 기자들도 일정에 차질을 빚어 어려움을 겪었다. 실무 접촉을 취재하기 위해 숙박과 비행기 등을 예약하고 출국하려다 탑승 직전에 되돌아온 기자도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취소 소식을 들은 한 기자는 “트럼프가 서한에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서 회담이 ‘완전 결렬’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현장 취재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지 더 진행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렇게 회담이 무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취소 통보 하루 만인 지난 25일 트럼프는 “북한과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만약 회담이 있게 된다면 같은 날인 6월12일에 싱가포르에서 열릴 것 같다”고 회담 성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뜻밖의 소식은 계속됐다. 지난 26일 밤 8시쯤 ‘2차 남북정상회담’ 속보가 뜨고 다음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언론사들은 일제히 ‘판문점 번개’ 소식을 속보로 내놓으며 톱으로 올렸다.
한 청와대 출입 기자는 “기자단이 속해있는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에 청와대가 공지한 내용을 보고 회사 지하에서 밥을 먹다가 뛰쳐 올라갔다. 출입 기자들 중에는 퇴근하다가 강변북로에서 유턴해서 다시 복귀했다는 기자도 있고, 어디 놀러가 있다가 확인했다는 기자도 있더라”며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그는 “정상회담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청와대 사람들도 대다수가 회담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취재가 굉장히 어려웠다”며 “뉴스 중에 전화연결을 한 후 당시 회담 영상을 바탕으로 설명 가능한 내용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북미정상회담의 불씨가 살아났지만 비핵화와 평화협상을 목전에 두고 향후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예정이다. 북한과 미국의 기싸움 속에서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양국 모두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이 급선무다. 한 방송사의 기자는 “북미 정상이 만나는 건데 어떤 성과든 만들어내지 않겠나. 당분간 분위기도 좋게 이어질 것 같다”며 “실제로 이행단계에서 잡음이 없을지가 변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비핵화 문제는 북미 간에 푸는 게 제일 중요한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청와대 출입 기자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고 미국도 체제 보장의 의지가 있다면 가운데서 어떻게 방법을 찾아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북미 간 논의를 지켜보며 실무적인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각변동의 여파 때문에 아직 긴장이 안 풀린 상태”라며 “지금은 ‘문 대통령이 12일에 싱가포르에 갈 수 있느냐’, ‘남·북·미가 싱가포르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최근에 관성에서 벗어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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