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와 '마초 가부장'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 Books의 지면을 개편하면서 새로 시작한 코너 중 하나가 ‘디어 라이터(Dear Writer)’다. 퓰리처상을 받고도 영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쓰는 줌파 라히리, 세계에서 가장 젊은 철학교수인 옥스퍼드대 윌리엄 맥어스킬 등을 모셨는데, 가장 격렬한 호응과 논란을 이끌어낸 인물은 따로 있었다. 50년째 산골에 파묻혀 홀로 문학의 광맥을 파고 있는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74)다.


사실 겐지에 대한 한국 문단의 지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학은 떼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한 뒤 시골로 들어가 남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글을 써내는 삶에 많은 한국 문인들이 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농사짓듯 써낸 책이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100여권.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명절도 예외 없이 글노동을 실천했다는 작가. 그렇게 성실하게 쓰면서도 자신이 너무 대충대충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나이 50이 되었을 때 머리를 깨끗하게 밀어버린 작가. 그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지금도 하루에 두 번씩 머리를 면도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일본 문학의 3대 나르시시스트라고 단칼에 날려버리는 작가.


어떤 독자들은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 이 작가에게 다시 무릎을 꿇게 되는 이유가 있다. 50년 동안 일관된 실천 말이다. 겉으로는 멋지게 말하지만 삶은 엉터리거나, 잠시 동안 멋진 말과 실천을 병행하는 예술가들은 적지 않게 봐 왔지만, 무려 50년을 한결같이 성실한 삶이라니.


꽤 넓은 지면에 인터뷰를 실었지만 그래도 쓰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다.
‘마초 가부장’이라는 페미니즘의 비판과 관련된 이야기다. 힘줄과 핏줄 울퉁불퉁한 그의 팔뚝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그는 ‘사나이는 힘’이라 믿는 노인, 아니 사내다. 다 좋지만 지나친 남성우월과 여성혐오를 의심하는 독자들이 있다고 짐짓 물었다. 물론 그는 격렬하게 부정했다. 이런 반박이다. 집 주변 텃밭과 정원을 합하면 300여 평. 아내에게는 화분 물 주는 일 하나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온전히 그의 노동이다. 뱃살 하나 없는 70 노인의 신체가 놀라워 물었을 때, 그는 “프로 정원사 치고 배 나온 사람 봤냐”며 반박했다. 대신 집안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리도 청소도, 빨래도. 온전히 ‘마나님’의 몫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활비를 책임진다. 약한 여자에게 힘든 노동 시키지 않고, 밖에 나가 엉뚱한 여자 쳐다보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는 내가 책임진다는 사내. 그걸 가부장이고 마초라고 규정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독설로 유명한 작가의 산문집 제목으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가 있다. 낭만과 환상을 갖고 귀향·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일갈이다. ‘한적한’ ‘아름다운’ 등의 형용사로 시골을 떠올리는 도시인들에게 당신의 단어를 말해달라 청했다. 그의 어휘는 이렇다. 음습(陰濕), 무지(無知), 교활(狡猾), 눈앞의 욕망(目先の欲望)….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값싼 꿈 꾸지 마라. 소년소녀의 꿈으로 시골에 이주하는 인간치고 제대로 사는 사람 없다. 도시가 지옥이라면 시골도 지옥이다. 도시는 그래도 도망칠 구멍이라도 있지, 여기는 그나마도 없다.


자신의 삶은 엉망이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떠벌리는 위선적인 사람들. 또 겐지의 표현처럼 소년소녀의 꿈으로 현실을 잊고 판타지로 도피하려는 사람들. 이번 가을은 겐지의 말과 글로 눈과 귀를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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