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9년의 시간, 견뎌낸 노종면·현덕수·조승호

YTN 해직자 복직협상 타결

▲2016년 11월 서울 상암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제작발표회와 해직 3000일 ‘복직 기원 토크 콘서트’에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8년 10개월의 세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으로 훌쩍 컸고, 어느새 귀밑머리는 희끗희끗 세어지고 지천명을 넘긴 나이가 됐다. 오늘 아침에 복직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맙다”는 말밖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한 싸움과 버팀의 시간을 딛고 그들이 돌아온다. 2008년 10월 YTN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해고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마침내 복직한다. YTN 노사는 4일 “해직자 복직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혔다. 해직 3225일만이다.

 

YTN 이사회 의결과 노조 대의원대회 추인을 거치면 해직자들은 이르면 8월말쯤 출근할 것으로 보인다. 노종면 기자는 이날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복직의 시간을 있게 만들어 준 촛불시민과 복직에 최우선을 두고 도와준 YTN 동지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노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할 수 없이 큰 선물을 받았다. YTN 보도를 시민의 보도로 지켜내는 일을 소임으로 알고 한 걸음 한 걸음 실천해 내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YTN 해직자 복직은 언론개혁의 한 부분이고 시작일 뿐”이라며 “MBC, KBS 싸움에 연대하는 것으로 YTN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1월27일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은 뒤 노종면 기자가울먹거리고 있다. 왼쪽은 눈물을 흘리는 김용수 전 YTN 노조 집행부 사무국장. ‘뉴시스’

현덕수 기자는 “이런 일이 반드시 오리라는 기대를 접은 적이 없었다”면서 “해직을 자신의 일처럼 지지하고 싸워준 YTN 동료와 선후배, YTN 해직사태를 언론개혁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기울여준 시민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현 기자는 “YTN 복직이 MBC와 KBS 문제를 해결하고, 언론개혁을 향한 첫걸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승호 기자는 “9년간 어떻게 버티느냐가 화두였는데, 복직이 확정되니 기쁘다”면서 “YTN 동료들, 연대해준 언론사 동지들,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밖에 드릴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들어가서 잘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다”면서 “MBC와 KBS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종면 기자 등 YTN 기자 6명은 2008년 10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 선임에 반발해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다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1980년 언론인 강제 해직 이후 최대 규모의 언론인 해직 사태였다.

 

YTN 기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징계무효 확인 소송을 벌였고, 지난 2009년 11월 1심은 “방송의 공정보도의 원칙 내지 정치적 중립이 저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그런 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6명 전원 ‘해고 무효’를 판결했다. 하지만 2011년 4월 항소심은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의 해고는 정당하고 권석재·정유신·우장균 기자의 해고는 부당하고 판결했다.

 

대법원 선고는 2심 판결 이후 무려 3년7개월 만에 내려졌다. 2014년 11월27일 대법원은 해고자 6명 가운데 권석재·정유신·우장균 기자에 대해서만 해고 무효를 선고했다.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권석재·정유신·우장균 기자는 그해 12월1일자로 복직했으나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는 지금까지 9년 간 해직기자로 지내왔다.

 

YTN 노조는 이날 ‘해직자 복직은 모두의 승리입니다’ 제목의 성명에서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은 지 9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해직자 복직은 YTN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외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3월28일 서울 남대문 YTN 사옥에서 개최한 해직 2000일 행사가 끝난 뒤 찍은 기념사진. YTN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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