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인맥, 언론사 최고위층에도 있어"

이진동 TV조선 부장이 말하는 취재 뒷이야기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

“최순실씨 측근으로 보도된 고영태씨가 2014년 말쯤 찾아왔다. 당시 그는 최씨와 사이가 크게 틀어진 상태였는데, 최씨에 관해 두서없이 여러 얘기를 했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주장인지 알기 어려워, 입증할 만한 자료들을 찾아보라했다. 이어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이 터졌고, 2015년 1월쯤 이른바 ‘샘플실’ 영상과 ‘최순실이 짠 문화융성 사업과 예산’ 자료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문건을 보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A4용지 한 장에 문화사업 개요만 정리해놓고 예산액수를 수십억씩 적어놓았으니 누가봐도 장난 같았다. 그런데 1년 동안 지켜보니 문건대로 문화융성사업의 틀이 짜이고, 예산이 집행된 걸 보면서 ‘아, 이건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차은택 의혹 보도를 이끌며 ‘최순실 게이트’의 물꼬를 튼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 그는 기자와 만나 여러 인터뷰에서 못다한 취재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샘플실’ 영상과 문건은 어떻게 입수했나.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부분이기 때문에 얘기한다면 2015년 1월 무렵 최순실씨 측근으로 보도된 고영태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확보했다. ‘샘플실’을 담은 영상과 박스 1개 분량의 문건이었다. 최순실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최순실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다’는 그의 이야기는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가져온 문건대로 문화융성사업이 1년여에 걸쳐 차근차근 정부 정책으로 이어지고, 예산이 반영되는 걸 보면서 점차 큰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초 문화창조융합벨트가 출범하고, 차은택씨 행사마다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간단치가 않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 의상을 전담해 만드는 최순실 '샘플실' 동영상.


-최순실씨 인터뷰 영상은 어떻게 찍었나.

“최순실씨는 노출을 꺼린다. 그래서 자주 집을 옮겼다. 차움빌딩 2층 레스토랑에서 정부 각료를 만나 사적 보고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차움빌딩을 거주지로 꼽았다. 취재기자와 영상기자가 그 곳에서 최씨의 차량을 확인하고, 며칠간 주차장 뻗치기를 했다. 최씨는 7월17일 TV조선 카메라에 포착된 뒤, 주거지가 노출되자 내부 제보자 색출에 나섰고, 나에게 영상과 문건이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 당연히 그 사실을 청와대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렵지 않았나.

“7월17일 이후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살아있는 최고 권력, 최순실 뒤에 대통령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왜 두렵지 않았겠나. 거의 두 달간은 잠도 오지 않을 정도로 고뇌도 많았다. 후배들에게 '기자가 알고도 안쓰면 직무유기'라고 취재를 독려했는데, 사실 자기최면이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취재과정에서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관련자는 ‘당신, 죽을 수도 있다’며 걱정하는 취지로 경고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공격이 시작됐는데.

“TV조선이 최순실 인터뷰 영상을 찍은 게 7월17일이다. 조선일보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 보도는 다음날인 7월18일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가 한창 이어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8월 중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며 조선일보를 공격했다. 세간에서는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반격으로 해석했지만 나는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겨레 김의겸 선배가 칼럼에 ‘우병우가 아니라 미르재단이 본질’이라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았나. 나중에 알고보니 5~6월 쯤 샘플실 영상 등의 보도를 위해 여러 법적 검토를 해줬던 법조인 가운데 한명이 한겨레에 한 얘기라는 걸 알게 됐다.”


▲대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800억 가까운 돈을 냈고 이 과정에 청와대 수석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TV조선 보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향응을 받았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도 청와대의 작품인가.

“청와대가 아니면 누가 그런 내밀한 자료를 줬겠나. 우병우 민정수석실은 역대 최강의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과거 국정원이 하던 사찰성 정보까지 취급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당시 김진태 의원은 송 전 주필 의혹 관련 자료 출처에 대해 “입수경위는 밝히기 어렵다. 적어도 수사팀에서 받은 건 분명히 아니다”고 했다.


-한겨레가 9월20일 ‘최순실’의 실명을 등장시킨 후 최순실 영상을 보도할 수도 있지 않았나.

“타이밍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 적당한 시점에 보도하려고 했는데,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먼저 나왔다.”


-안하려고 했던 건 아닌가.

“그건 아니다. 안하려고 했으면 1년 동안 취재하고, 법적 검토까지 받았겠나.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보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진동 부장은 “언론사 최고위층과 사정기관 고위층에도 최순실 인맥이 있다는 걸 취재 과정에서 알게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는 검찰의 삼성 미래전략실 압수수색을 잘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삼성은 최씨 모녀에게 직접 35억원을 지원했다. 삼성이 왜 저렇게 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은 이미 정권 초창기부터 정윤회와 최순실씨의 존재와 힘을 파악했고, 두 사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청와대 관심 사안이었고, 민정수석실에서도 따로 챙긴 것으로 알고 있다.”


-터질 게 몇 개 더 있다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말고도, 대통령과 연관된 큰 사안이 1~2개 더 있다. 언론이 전면적인 취재 경쟁에 나선 상황이니 차근차근 드러날 걸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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