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국 간부들 압박성명에 부글부글

기자협회 "재발 시 총회 등 수단 취할 것"

KBS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의견 개진을 “편집권 침해”라며 보도국 간부들이 집단 성명을 낸 가운데 이를 두고 KBS내부가 비판의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구성원들은 “편집권은 간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날선 지적을 이어가고 있으며, KBS기자협회는 재발 방지와 보도위원회 개최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이번 사태를 고대영 사장이 밝혀온 편성규약 개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이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KBS '뉴스9'은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 관련 보도 소식을 3일 동안 단 2건의 단신으로 처리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뉴스9' 25번째 꼭지 간추린 단신 중 일부 갈무리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국 간부 18명은 지난 17일 편집회의 중 이병도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의견 제기가 아니라 압력이었고, 그런 만큼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논지의 집단 성명을 사내 게시판에 공개했다. 앞서 새노조가 보도국 간부들의 이 같은 주장을 비판하고 나선 데 따른 반박 성명이었다. 새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16일 아침 편집회의에서 이병도 협회장이 “세월호 청문화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하는 보도를 하는 게 어떤가”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정지환 국장이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보도국 간부들의 집단 성명이 게시된 17일부터 21일 현재까지 KBS 사내 게시판에는 구성원들의 성토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명을 걸고 “방송법이 보장하는 편집권은 편집회의에 참석하는 간부 10여명의 전유물이라는 건가”, “세월호 청문회 관련 리포트를 9시 뉴스에서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잘된 편집권 행사였다고 주장하는 건가” 등의 발언을 통해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손관수 방송기자연합회장은 21일 게시글을 통해 “편성규약에 의해 엄연한 ‘부장단 회의의 한 구성원’인 기자협회장의 발언에 그런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것은 평기자의 대표를 무시하고 ‘너희들은 입닫으라’하는 이율배반적이고,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공정방송 노력에 어깃장을 놓는 태도”라며 “소통을 얘기하면서도 ‘너희들하고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배척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아쉬운 것은 보도국장을 비롯한 국부장단 모두 협회장의 대선배들이며 또 기자협회의 회원으로 다른 방식을 통해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부장단 연대 성명서’라는 어마어마한 즉자적인, 득달같은 형식을 통해 대외적인 압박에 나섰다는 점”이라며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며, 오디언스가 과연 기자들인지 아니면 다른 곳을 향한 것인지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실명 게시자 A기자는 “평기자를 대표하는 기자협회장이 의견을 게시하는 것조차 부당한 압력이며 편집권의 침해라는 것이냐”며 “정권의 외압이 KBS의 독립성을 크게 뒤흔들고 있는 현실에서, 평기자들의 참여와 견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할까? 아니면 소수 간부의 독점적 편집권 점유가 ‘언론의 자유를 위협할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참석과 의견 제시 정도를 평기자들의 ’참여와 견제‘라고 거창하게 표현하는 것도 사실 민망하다”고 밝혔다.

실명으로 글을 남긴 B기자 역시 “한두 사람의 판단도 아니고 최소 20년 이상 뉴스를 다뤄온 보도국 국부장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게 세월호 청문회 뉴스가 9시 뉴스에 다룰만한 뉴스가 아니었다고 했다면 그 판단력은 존중받기 힘들 것 같다”며 “9시 뉴스의 편집권은 보도국 편집회의의 장인 보도국장이 대표로 행사하고 있지만 그 편집권은 뉴스제작 종사자들의 총의를 담아야 한다. 다만 뉴스편집을 매번 전체 기자가 모여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선 기자들의 생각이 부장들에게 수렴되고 부장 이상이 모인 편집회의를 통해 행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KBS기자협회는 지난 18일 기자협회 집행부-운영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편집권 침해’ 관련 안건을 의결, 재발 방지와 보도위원회 개최 등을 사측에 강력히 요구했다.


집행부 5명이 참석하고, 운영위원  28명 중 20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은 △기자협회장이 KBS편성규약에 따른 제작실무자 대표임을 확인 △협회장의 편집회의 등 참석과 의견개진이 평기자의 당연한 권리임을 확인 △국부장단의 편집권 침해 주장은 제작 실무자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 △협회장 의견 제시를 가로막는 행위 재발 시, 기자협회 총회 등 대응 방침 공개 △이번 사태와 KBS보도에 대한 보도위원회 개최촉구 등이다.

새노조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편집권 침해’라는 사측의 주장을 비판하며 “‘편성규약’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힌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고대영 사장이 편성규약 개정을 공언하며 청문회 등에서 노조를 ‘제3자’로 규정한 데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새노조는 “평기자 대표인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에서의 의견제기는 방송법에 따라 제정되고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공식적인 행위”라며 “사측은 ‘방송법’은 물론 ‘편성규약’에서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 ‘편집권’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을 내세워 기자협회장의 정당한 의견제기를 막겠다고 겁박하고 나선 것”이라 지적했다. 이는 KBS방송 편성규약 제6조와 제15조가 규정한 내용을 근거로 한 것으로, 편성규약 시행세칙이 제정된 당시 보도본부장과 기자협회장은 이 내용에 공식서명을 한 바 있다.

새노조의 우려는 고대영 사장이 선임과정에서 누차 언급했던 개정 강행이 이번 사태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고대영 사장은 지난 11월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공정보도 의지를 묻는 야권의원들의 질의에 “방송법에 규정된 편성규약을 영국 BBC의 공정성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2001년 KBS사장과 노동조합, 기자협회 등이 합의해 제정한 편성규약을 사측이 주도해 개정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내왔다. 그는 “법적으로 제3자 규정이 있는데 노조는 제3자에 해당한다”, “BBC도 노조와 (편성규약 개정을) 합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새노조는 “KBS방송 편성규약은 앞선 성명에서도 밝혔듯 취재 및 제작 종사자를 대표하여 노동조합이 당시 KBS방송사업자 대표인 사장과 합의, 서명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노동조합은 방송법 제4조 2항과 4항에 따라 방송편성과 관련한 당사자이며, 기자협회장이 보도국 편집회의에 들어가 발언하는 것도 사측과 노측이 서명한 ‘방송 편성 규약’에 근거해 노동조합의 위임을 받은 행위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송법 제4조를 어기는 것은 사장”이라며 “방송사업자 대표인 사장은 방송법 제4조 2항과 3항에 따라 편성에 관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9시 뉴스 큐시트’를 매일 챙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새노조는 “KBS편성규약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편성, 보도, 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잇고, 그 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편집권이든 편성권이든 뭐가 됐든 그에 대한 권한을 보도국 간부들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고대영 사장은) 일부 부장들을 앞세워 방송편성규약을 무력화하려는 잔재주를 더 이상 부리지 말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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