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가 나만의 비밀기지 만드는 법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정체불명의 일본 비밀기지학회 소속 오가타 다카히로가 쓴 이 책의 제목은 말 그대로 ‘비밀기지 만들기’. 임윤정 한누리 두 사람이 번역했고, 프로퍼간다라는 낯선 이름의 출판사가 펴냈다.
이런 책을 누가 사 볼까. 당신의 우려가 당연하다. 그래서 기존 출판사는 퇴짜를 놨고, 대형 서점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다. 대신 소수 취향을 사랑하는 독립 출판사가 펴내고, 홍대나 연남동의 작은 동네 서점에서 취급한다. 인디 음악과 인디 영화가 있듯 출판에도 독립 출판이 있는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에서는 이런 독립 출판물을 모은 특별 전시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제목은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만들어진 거의 모든 출판물 600여권이 예술, 문학, 사진, 뉴스컬처, 라이프 스타일 등 10개 분류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다.
상업적인 이유로 기존 출판사나 서점에서는 외면받았지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한국 주류 문화 바깥의 소중한 시도. 때로는 치기 어린 반항이나 취향 공동체의 신변잡기 에세이도 보였지만, 대체로 이들이 지닌 실험성과 불온성이 반가웠다.
이 전시를 보면서 며칠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한 수상 소감이 떠올랐다.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미 구호처럼 유행하는 소감이 되었지만, “이상해도 괜찮아,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Stay weird, stay different)” 말이다.
애플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을 빗댄 이 소감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각색상을 받은 시나리오 작가 그레이엄 무어(34)의 작품이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의 일생을 다룬 일종의 전기 영화. 튜링은 2차 대전에서 영국과 연합군을 구한 천재였지만, 삶은 불행했다. 학교 다닐 때는 외톨이였고 동성애자로 비난받다가 젊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역시 동성애자였던 그레이엄 무어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냐고 말이다. 그 역시 16세 때 자살하려고 했고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왕따였지만, 지금은 튜링과 달리 이렇게 멋진 관객을 만났다는 것. 심지어는 오스카까지 자신을 축복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이 순간은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거나,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그런 사람을 위한 시간”이라고 했다. 단순히 동성애자로 한정된 교훈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자신이 소수라고 느끼는 법. “이상해도 괜찮아,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는 무어의 소감이 더욱 각별했던 이유다.
다시 ‘비밀기지 만들기’로 돌아가자. 어른이 되어서도 비밀기지 따위를 만든다면 남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이상한 시도가 창의적인 목소리를 빚어내는 법. 다시 한 번, Stay weird, stay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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