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재전송 허용은 지방사 죽이기"

지역방송사 분노 폭발

“지역방송은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언론과 문화에 있어 서울로의 수직통합과 획일화만을 초래하며 지방화 시대에도 역행하는 조치입니다.”

수도권 지상파 방송의 위성재전송 문제가 방송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7개 지역민방과 19개 지방MBC 계열사가 동시에 파업을 결의했고, 11일 현재 23일째 방송회관 로비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는 등 지역방송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네트워크 참여거부, 한나라당사 점거농성, 이례적인 지역방송사 공동 프로그램 제작에 이어 12일 전국 지역방송사 노동자 1000여명이 상경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 등 투쟁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노조 뿐만 아니라 지역민방 사장단, 지방MBC 계열사 사장단도 수도권 지상파 방송의 위성재전송 철회와 방송법 78조 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정치권에서도 방송법 개정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돼 있는 상황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방송위의 채널정책 발표가 있은 지난달 19일. 물론 그 이전부터 KDB가 MBC, SBS도 재전송할 것이라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지역방송사들의 반발이 예상됐었다. 방송위의 결정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위는 ‘2년간 수도권내로 제한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기본적으로 MBC와 SBS의 위성재전송을 허용함으로써 KDB의 손을 들어줬다. 근거는 현행 방송법 78조가 KBS와 EBS를 의무재전송 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MBC, SBS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간 계약에 의해 재전송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지역방송협의회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반도 전역으로 송출되는 위성방송을 수도권 내로 제한하기 위해서 수도권 외 지역에 보급되는 셋탑박스에 수신제한장치를 설치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신제한 장치라는 게 언제든지 풀 수 있는 것이고, 지방사람이 서울 대리점에서 셋탑박스를 구입해 설치할 경우 막을 방도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방송위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강대인 부위원장은 채널정책 발표에 앞서 협의회 측에 “수신제한장치는 불완전한 것”이라며 “허용하면 허용하고 안하면 안하지 수도권만의 허용이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역방송사들이 채널정책 결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며 방송위에대한 불신감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위성방송을 정착시키고 살리기 위해 지역방송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역방송협의회 최창규 의장은 “서울발 프로그램과 정보가 위성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방으로 내려오게 되면 지역방송의 매체 영향력은 크게 약화돼 광고 판매 감소 및 지역방송 프로그램의 축소로 이어지고 결국 Key사(몇몇 방송국에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중심이 되는 방송국)와의 네트워크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본사와 지방MBC 계열사가 단일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MBC 노조의 경우 당초 유보적인 입장에서 ‘반대’로 선회한 것도 ‘네트워크 붕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역방송사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 이면에는 그동안 지역방송사들이 느껴온 소외감도 한몫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방송정책의 결정을 지역사정을 모르는 ‘서울 사람’들이 주도하고, 편성권과 경비집행권도 서울 사람들이 쥐고 있으니 지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리 없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방송발전기금 가운데 지역방송을 위해 쓰여진 액수가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의무는 주어지지만 혜택은 적다는 피해의식이 크다. 지역방송사들이 방송위원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중에 지역방송을 대변하는 인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방송도 경쟁력을 갖추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지역방송은 현재 서울 Key사의 프로그램을 80% 중계하고 20% 정도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을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여서 자체 제작비율을 높이라는 것도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오락프로그램보다 교양프로그램에 주력하고 있는 지역방송이 시청률이 낮다고 경쟁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비록 20%의 지역프로그램이지만 그 속에는 고향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지역방송사들의 주장은 생존을 건 싸움이다. 때문에 치열하다. 또 거기에는 지역방송이 지역문화에 기여하는 역할과 지역여론 형성의 창이라는 ‘명분’도 가세하고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둔 국회의원들도 지역방송사의 주장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송계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위성재전송 문제는 결국 방송법 78조의 개정 여부가최대 관건인 셈이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가 있다. 박미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