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생(未生)들이 투표를 포기한 이유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14일 끝난 일본 총선에서 아베 정권이 압승했다. 전체 475석 가운데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325석(자민 290석·공명 35석)을 쓸어담았다. 연립여당의 의석이 ‘3분의 2(317석)’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는 2012년 집권 이후 우경화 노선으로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온 아베 총리가 이제 평화헌법 개헌까지도 밀어불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표심을 끌어당길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을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번 선거를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인구 구성 변화가 선거에 미친 영향은 한국과 중국 등에 시시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지난 2006년에 동북아 3국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60대 이상의 총인구가 20∼30대 젊은층 인구보다 많아지기 시작해 해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노인 세대의 정치적 선택이 정치판을 좌우하는 양상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던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의 주역이었던 지금의 일본 노년층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나 혁신보다는 자민당 중심의 익숙한 체제를 선호한다. 이들은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아베노믹스의 문제점과 우경화 노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베가 외치는 ‘강한 일본’ 구호에 취해 시대를 과거로 돌리는 선택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 노년층은 주요 선거때마다 7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연령별 투표율이 집계되지 않았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젊은층을 압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30 세대의 투표율은 30%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세대별 총인구에서도 노년층에 뒤지고 투표율에서도 밀리다보니 “어차피 노인네들이 미는 사람이나 정책이 선택될 것”이라는 정치적 무력감이 팽배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장 대신에 스키장과 놀이공원, 쇼핑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일본의 젊은층은 ‘유토리’(여유) 교육 세대로 불린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성과 자율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 풍토에서 성장했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과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획일적이고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일본 사회 분위기를 밝고 창조적으로 바꿀 것으로 한때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일본 사회의 장기침체 속에서 유토리세대의 상당수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다행히 회사에 입사한 젊은이들도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에 억눌려 갈등을 겪고 있다.


일본의 보수적 사회평론가와 노년층은 이런 상황에서 틈만 나면 유토리 교육이 젊은이들의 학력을 떨어트리고 나약하게 만들었다며 개탄하고 있다. 지금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대다수 문제들은 노년 세대의 잘못된 선택 때문인데도 마치 젊은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결국 이런 꽉 막힌 사회 분위기에 주눅 드는 일본판 ‘미생(未生)’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계속 선거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지만 일본의 미래는 그만큼 더 어두워졌다.


한국도 머지않은 미래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일본처럼 꿈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를 외면하는 ‘슬픈 현실’과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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