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암 발병'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다

2년여 투병생활 마치고 복직한 한국경제 이미아 기자


   
 
  ▲ 한국경제 이미아 기자  
 
“가슴에 ‘C’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암 환자였다는 낙인이다. 그래도 나는 그 ‘C’를 ‘Cancer’ 대신 ‘Can’으로 바꿔 생각하려 한다. 살아남았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니까.”

한국경제신문 이미아 기자가 이 달 ‘엄마는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를 출간했다. 암 환자로 지냈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이 기자는 올해 2월 투병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다. 2010년 9월 휴직서를 낸지 2년 반 만이다.

2010년 9월초, 여느 날처럼 회사에서 일하던 이 기자는 유독 극심한 어지럼증에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혈액검사에 조직검사, 골수검사까지…. 입원 3주째인 9월28일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혈액암 중 하나인 악성 림프종. 림프구가 이상을 일으켜 암세포로 돌변하면서 몸의 면역 시스템을 고장 나게 만드는 병이다. 당시 이 기자는 임신 7개월째였다.

“진단을 받은 날 제정신이 아니었죠. 하지만 눈물은 안 나왔어요. 울 틈이 없었죠.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더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저나 아이나 다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생존율이 60~70%로 높은 편이었지만 암이 골수까지 퍼져 자가 조혈모세포(골수) 이식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임신 후반기라 항암치료와 출산이 가능하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항암제 성분이 자궁과 태반에서 걸러져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8번의 항암치료 중 3번이 임신 중에 이뤄졌다. 이 기자는 배를 끌어안고 태명이 복둥이인 뱃속의 아이에게 “너를 꼭 살리겠다”고 속삭였다. 치료를 위해 아이는 9개월만에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다. 3.2kg의 건강한 사내아이로.

투병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는 절망감이었다. 휴직에서 오는 허무함은 물론 면역력이 약해 외출도 쉽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절망과 희망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큰 힘이 되어준 가족이 그랬고, 반드시 병을 이기고 다시 기자로,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컸다. 병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됐다는 한 아주머니의 “돌아갈 직장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때의 시간은 기자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편집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바깥에서 바라보니 기자가 특별한 직업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 등 특별 대우해주는 이들만 만나다보니 그것이 익숙해지고 당연한 것인 양 여겨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기자는 그저 수천, 수만 명의 기자 중 하나였다. 그는 “기자의 의무가 특별한 것이지 권리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사 속 이야기도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가 됐다. 장기 휴직자가 되다보니 무직자 취급을 받고 대출은커녕 카드 한 장 만들기가 어려웠다. 한발 떨어져 나와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졌고 결국 자신도 그 속에 함께 사는 한 명의 사람일 뿐이었다.

이 기자는 2011년 8월 조혈모세포 이식 후 1년간 관리하며 건강을 회복했다. 완치 판정을 위해서는 5년이 지나야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자로서의 목표를 새로 세웠다. 이전에는 특종이 최대 목표였지만, 한순간의 특종보다는 이제 독자들이 오래 간직하고 볼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아이 엄마인 제가 기자로서 어떤 무기를 갖춰야 할지 고민이에요. 하지만 독자들이 ‘스크랩할 수 있는 기사를 쓰자’는 목표는 분명해요. 동료들도 제가 겪었던 경험처럼 가끔은 편집국 밖에서 기자로서 자기 자신과 신문, 편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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