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언론자유 침해 논쟁 가열
최성진 기자 사건 등으로 재주목…"위법성 조각사유 과도한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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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보도와 관련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지난 21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에 출석한 후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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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 및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두 사건에서 공익의 목적보다는 개인정보를 우선시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노회찬 진보정의당 전 의원은 대법원으로부터 ‘안기부X파일’ 사건과 관련해 통비법 위반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보도 자료와 떡값 검사의 실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공익적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노 전 의원은 “수사를 촉구한 공익적 목적이자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활동의 일부”라고 반박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녹음ㆍ청취한 뒤 기사화 해 통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 기자는 “공적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정수장학회의 사적인 재산 처분을 알렸는데 검찰이 보도의 공익성은 소극적으로, 통비법은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통비법은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를 위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공개 또는 누설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이와 달리 통비법은 공익 등의 목적을 위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통비법 상 공익 목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아니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위법성 조각사유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26일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실 주최 긴급토론회에서 이재화 변호사는 “통신비밀과 대화의 비밀은 절대적인 기본권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요청이 더 큰 경우엔 제한될 수 있다”며 “대화자가 공인이고 공개할 내용이 진실일 때, 대화내용의 공개가 공익을 위할 때 위법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위법성 조각 이유를 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ㆍ녹음 등의 범죄 사실을 고발하거나 비상한 공적 관심사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정되는 등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언론 보도로 인한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의 보호에 의해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반대 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들은 “우열관계를 가리기 어려운 기본권인 통신비밀보호와 언론의 자유가 서로 충돌할 경우 양자택일 식으로 어느 하나의 기본권만을 쉽게 선택하고 나머지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언론의 자유와 통신비밀보호로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를 형량해 규제 폭과 방법을 정하고 최종적으로 보도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한다”고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2일 서영교 민주통합당 의원 외 16인은 통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명문화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항목이다. 서영교 의원실 측은 “공익과 국민의 알 권리에 따른 언론의 보도나 부정ㆍ비리를 밝히는 내부 고발에 따른 정당방위 근거를 마련하는 차원”이라며 “통비법에서 공익을 인정하고 무죄를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것”이라고 밝혔다. 서 의원 측은 “예를 들어 살인죄는 위법하지만 경우에 따라 정당방위로 무죄 추정을 할 수 있게 돼 있지만 통비법은 정당방위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공익 목적이 있어도 무조건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개정안에는 현재 징역형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처벌 항목에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금형을 추가했다. 서 의원은 “일률적 징역형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비법 규정은 지나치게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만 치우쳐 언론과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비록 통비법을 위반해 비밀리에 감청한 내용이라도 범죄예방 및 공익적 목적을 위한 공개행위일 경우 언론 자유를 위해 법에서 처벌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데 통비법은 사례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일체 공개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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