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후보 밝히는 미국 언론, 못 밝히는 한국 언론
박근혜 후보도 2007년 "지지후보 공개는 표현의 자유"
올해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한국과 미국 언론 보도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대다수 미국 언론들은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입장을 밝힌다. 반면 한국 언론은 이를 금기시한다.
미국 대부분의 언론들은 대선 한 달 전인 10월부터 사설과 칼럼을 통해 후보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10월 2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대학 대선 프로젝트팀이 미국 100대 일간지(발행부수 기준)의 대선 후보지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오바마를 지지하는 신문은 17곳, 롬니를 지지하는 신문은 15곳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오바마를 지지했던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 ‘버락 오바마에게 재선을’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거듭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미국 전체 발행부수 8위인 워싱턴포스트도 26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4년 더’라는 사설을 내 힘을 실었다. 이외에도 미국 전체 발행부수 4위인 LA타임스와 11위인 덴버포스트 등이 오바마 지지를 대외적으로 밝혔다.
미국 전체 발행부수 7위인 뉴욕포스트와 10위인 댈러스모닝뉴스는 롬니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에는 오바마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아이오와주의 최대 일간지 디모인 레지스터가 롬니를 지지했다. 디모인 레지스터는 4년 전에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롬니가 새롭게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롬니로 선회했다. 이밖에 경합을 벌이고 있는 플로리다의 올랜도 센티넬을 비롯해 펜실베이니아, 미시간주의 지역 언론 7곳도 롬니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모든 미국 언론들이 지지후보를 밝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전체 발행부수 1위인 월스트리트 저널과 2위인 USA투데이는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928년 당시 후버 후보를 지지한 이후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 USA투데이도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례다.
미국 언론들은 대선 후보 지지를 밝히지만 편파 시비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미국 언론의 후보 지지는 언론의 객관주의적 전통에 근거한 것”이라며 “사설을 통해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일반 기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걸림돌이 있다. 언론이 특정 후보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공직선거법 제8조 언론기관의 공정보도 의무 등에 위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적극적인 후보 지지는 선거운동에 준하는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선거기사심의위원회에서도 선거기사를 심의할 경우 사설, 논평, 광고 등 그밖에 선거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파성이 강한 한국 언론 풍토에서 지지후보를 공개하면 편파 보도가 더 심해져 최소한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사실과 의견 보도를 구별하는 공정 선거보도 원칙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으며 지지후보 공개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한 중앙일간지의 정치부장은 “대선 지지후보와 정당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오히려 더 공정하고 투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간접적으로 숨어서 입장을 내는 것보다 직접 의견을 밝히면 오히려 국민들이 각각의 언론을 보고 오히려 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지후보 공개를 막는 관련 법조항을 손질하고 공개 여부는 언론사 자율로 선택하면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근혜 현 새누리당 후보도 2007년 대선 당시 본보가 유력 대선주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서면 질의에 “언론이 대통령선거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것 또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며 “지지후보 공개 여부를 신문사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하고, 이를 금지하는 근거가 되는 관련법 조항의 개정이나 폐지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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