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검' 내곡동 특검,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스페셜리스트│법조]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 심석태 SBS 기자  
 
이른바 ‘내곡동 특검’의 수사 속도가 빠르다. 개청식 다음날 주요 관련자들을 일제히 출국 금지했다.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검찰은 얼굴도 직접 못 봤던 대통령 아들을 수사 개시 열흘 만에 소환해 조사하는 등 발걸음이 신속하다.

솔직히 국민들 사이에 특검 수사 결과에 큰 기대는 없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많이 봐온 탓이 크다. 그렇지만 이번 특검은 이미 상당히 성공적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수사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결론을 뒤집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검찰이 보여준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던 수사 과정은 뒤집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건 자체에 대한 것은 몰라도 검찰 수사에 대한 특검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현 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신뢰를 흔든 사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은 무너진 검찰의 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다.

핵심은 8개월 가까운 수사 끝에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는 데 있지 않다. 정치적 의혹을 두고 벌어진 수사 가운데 면죄부만 줬다거나 변죽만 울렸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기소를 해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검찰의 판단이 관찰자의 눈높이에 일일이 맞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짐작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에서 사람들을 진짜 놀라게 한 것은 수사 전 과정에 걸쳐 나타난 검찰의 무신경과 무기력이었다. 핵심 인물인 대통령 아들에 대한 조사는 한 차례 서면조사로 끝이었다. 검찰은 “아귀가 딱 맞아서, 불러서 추궁할 게 없어서 안 불렀다”고 했다. 앞으로는 아귀에 딱 맞는 서면진술서 내면 소환도 안 하고 불기소 처분해줄 거냐는 조롱을 받았다. 더구나 서면진술서 대필설까지 나오는 등 서면진술서를 신뢰했던 검찰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해외에 체류하던 땅 매도인이 일시 입국했는데도 불러 조사하거나 출국 금지하지 않은 것도 논란을 불렀다.

화룡점정은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의 발언이었다. 특별검사 임명 하루 전에 나온 “기소를 하면 배임에 따른 이익 귀속자가 대통령 일가가 된다. 이걸 그렇게 하기가…”라는 고백은 원래 발언 취지가 무엇이든 애초에 검찰이 어떤 자세로 수사에 임했는지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수사권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때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고비처) 신설이나 대검 중수부 폐지가 거론될 때 대체로 기존 체제의 장점이 더 크다는 게 일관된 내 생각이었다. 전문성과 자질 면에서 그래도 검찰이 좀 낫고 중수부 체제를 흔들려는 끊임없는 시도에 정치적 의도가 짙다고 봤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좀 바꿨다.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고비처는 몰라도 상설 특검이나 중수부 폐지는 대세다. 물론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사람들을 허탈하게 하던 숱한 헛발질이 검찰 제도 변화를 위한 여론 조성에 밑거름이 된 셈이다.

국민들이 검찰에 순도 100%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다들 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의혹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칭찬은 못 들어도 당당할 수 있다. 구차한 변명을 하려다 동티날 일도 없다. 문제는 검찰권 행사가 정상적이냐다. 권력이 관심을 갖는 사건은 총력전을 벌이고, 권력이 관련된 사건은 ‘발 수사’를 하는 행태만은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 듯하니 이를 어쩌랴. 자기 직분에 충실해온 검사들로서는 속이 터지겠지만 조직이 기본을 벗어날 때 제대로 목소리 내지 못했음을 탓할 수밖에. 심석태 SBS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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