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기사 하나로 생명 구한다"

기자협회 주최 '2012 사건기자 세미나'



   
 
  ▲ 지난 26~27일 제주KAL호텔에서 ‘성범죄 보도의 개선방향과 자살예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2012 사건기자 세미나’에 전국 언론사 사회부 기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성범죄·장애인 인권·자살보도 등 재인식 시급


전국의 사건기자들이 언론의 성범죄와 자살 보도의 개선 방향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지난 26~27일 제주KAL호텔에서 열린 ‘2012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성범죄 보도의 개선방향과 자살예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이 논의됐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주요 신문·방송사 사회부 기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개회사에서 “취재현장의 최첨병인 사건기자들이 모인 만큼 밀도 있는 세미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며 “언론의 공적 기능인 따뜻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살예방과 성범죄 보도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 개진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범죄보도준칙 실천 안돼
1섹션에서는 양현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성폭력 언론보도의 균형감각’이라는 주제로 각 언론의 성범죄 보도 윤리실종을 비판했다.

양 위원은 △사건의 내용이 자세하고 선정적으로 보도돼 끔찍한 사건 재현에만 편중 △피해자에 대한 보호 감각 결여로 2, 3차 피해까지 유발 가능 △부모와 피해자에게 책임 전가 △술과 포르노, 게임 등을 성폭력 공식처럼 부각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양 위원은 “여성민우회의 ‘성폭력 언론보도 가이드라인(2006)’,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세운 ‘인권보도준칙(2011)’이 있지만 실천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양 위원은 “언론에서 말하는 국민의 ‘알 권리’는 국민이 국가에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이라며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가의 정보 공개 모니터링과 정보 공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성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법적 지식을 알려야한다”며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 방식을 제공하고, 국민의 사회적·환경적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밝혔다.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 버려야
2섹션에서는 ‘장애인권 언론길라잡이 이해’라는 주제로 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장이 발제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대중매체는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등 비장애인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달했고,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 재생산했다”며 “언론보도에서 나타나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를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거나 장애를 질병처럼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왜곡, 혹은 지나친 미담 위주는 현실과 떨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장애인권 언론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취재할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장애인과 친숙해지도록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취재 시 장애인에게 카메라 작동의 시작과 끝, 각도 등을 미리 알려줘 움직임을 설명하고, 취재대상의 장애유형을 사전에 인식해 그에 맞는 취재장비를 챙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당수 기자들이 장애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다뤄야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이 자살예방 앞장서야
3섹션과 4섹션에서는 언론의 자살 보도에 관한 신중한 접근과 가이드라인 준수가 요구됐다.
‘자살현황과 미디어의 영향’을 발표한 김현정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회 부위원장(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언론인들은 좋은 기사 하나로 의사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국내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지만 자살보도 기사의 60.1%가 권고기준을 준수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12 사건기자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사회학습이론에 근거해, 언론 보도로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을 간접 경험하거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모방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살자와 유족의 사생활 침해 △이름과 사진, 자살 방법 및 자세한 경위 묘사 △자살 동기 단정 △자살을 영웅시하거나 미화 △충분한 근거 없는 일반화 △흥미 유발, 속보 및 특종 경쟁 수단화 등의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자살예방의 선봉자로 언론은 자살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며 “언론이 삶의 질과 웰빙, 정신건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강조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관심 촉구와 인식 개선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발행인·간부 인식 전환 필요
마지막으로 김종철 한겨레신문 기자(한국자살예방협회 미디어위원회 위원)는 “인권감수성에서 한 발 나아가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감수성을 높여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철 기자는 “전체적으로 한국의 언론 종사자들은 자살 보도 가이드라인에 대한 인식, 즉 생명감수성이 매우 낮다”며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제문에 따르면 이애주 전 새누리당 의원과 자살예방협회가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한 결과 신문은 미준수율이 2006년 29.1%에서 2009년 60.1%로, 방송은 48.3%에서 2009년 57.5%로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2011년에도 신문의 권고기준 미준수율은 69.8%, 2012년 8월까지 56.4%에 달했다.

김 기자는 “자살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고, 작은 사실에 근거해 자살 원인을 단순화하는 등의 보도는 피해야 한다”며 “자살률의 최근 경향, 최근의 치료 및 상담 발전 양상,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등을 넣어 보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건기자들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대구 학생 자살 사건, 양악 수술자의 자살 사건 등을 일례로 들며 보도 기준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김종철 기자는 “결국 권고 기준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계속되는 악순환”이라며 “일선 기자뿐 아니라 언론 발행자나 편집국 간부들이 원인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는 보도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을 지켜본 기자들은 이같은 자리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민지형 뉴스1 기자는 “기자들이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데 기자협회에서 유익한 기회를 마련했다”며 “무심코 써온 자살과 성범죄 기사에 조심할 점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고 내부적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는 숙제를 얻었다”고 말했다.

최성욱 뉴시스 기자도 “성범죄와 자살 등 사건 보도에 대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기자사회의 자발적인 합의와 준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치안 비용은 SOC 투자
한편 ‘치안인프라 투자의 의미와 필요성’을 주제로 특강에 나선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은 치안 자본의 현실과 투자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김학배 수사국장은 “치안에 지출되는 비용이 미래를 위한 ‘SOC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언론은 치안정책의 의제설정, 공권력 감시, 정책 홍보 기능 등을 수행하며 경찰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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