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숭이·앵무새보다 못하다?

[스페셜리스트│증권·금융] 고란 중앙일보 기자·경제부


   
 
  ▲ 고란 중앙일보 기자  
 
“주가 예측은 신도 못한다.”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이 전체 투자자의 1%도 못 되는 현실에 대한 레토릭이다. ‘사면 내리는’ 기막힌 ‘머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인데도 주식에서 손 떼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고.

레토릭은 실험으로 입증됐다. 2000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펀드매니저와 일반인, 원숭이가 주식투자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눈치챘겠다. 원숭이가 이겼다. 2000년 7월~2001년 5월 원숭이는 -2.7%, 펀드매니저는 -13.4%, 일반 투자자는 -28.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오래된 얘기라고? 최근 실험은 결과가 더 극적이다. 2010년 초 러시아에서 침팬지와 펀드매니저가 대결했다. 침팬지가 펀드매니저의 투자 성과를 두 배 가까이 앞섰다.

해외 얘기라고? 2009년 국내의 한 증권 포털사이트는 6월 말부터 6주 동안 앵무새와 개인 투자자 간의 주식투자 대회를 열었다. 이 기간 앵무새는 13.7%의 수익을 거뒀지만 개인들은 평균 원금의 -4.6%를 까먹었다. 투자 경력이 5년이 넘는 6명을 포함해 8명의 성과가 앵무새에 뒤졌다.

소위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졸업자가 발에 치이는, 학벌 좋고 똑똑하다는 소리 좀 들었던 펀드매니저들도 마찬가지다. 올 초 만난 선배는 어떻게 지냈느냐는 물음에 “미치겠다”며 입을 뗐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거쳐 지금은 한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로 있다.

“초·중·고등학교 때 항상 상위 5% 안에는 들었다. 대학 때 아무리 놀았어도 평균 이상이었고. 그런데 지금 내 펀드가 수익률 꼴찌다. 펀드가 100개 있다면 90등 언저리에서 비실댄다.”

이런 스트레스를 겪는 게 그 선배만은 아닐 듯싶다. 현대증권이 올 들어서 8월 말까지 주식형 펀드 수익률을 분석했더니 코스피 지수보다 잘한 액티브 펀드(펀드매니저의 주관에 따라 운용되는 펀드)는 전체의 14.5%에 불과했다. 이럴 바엔 뭐하러 수수료 물면서 펀드 투자하겠나.

펀드매니저의 ‘굴욕’은 글로벌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알파(α)의 종언’이 선고된 시대, 펀드매니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알파는 시장의 기대치를 웃도는 수익이다. 투자자는 ‘+알파’의 수익을 기대하고 비용(수수료 등)을 치르더라도 펀드를 선택한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알파가 사라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전 세계 뮤추얼펀드 가운데 지난해 각 펀드가 쫓는 대표지수(벤치마크)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전체의 27%에 불과했다. 주식·채권 등 개별 자산은 물론이고 종목과 지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시장이 한쪽으로만 쏠려 알파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수수료가 더 비싼 헤지펀드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롱숏 주식(높게 평가된 주식을 매도하고 낮게 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차익을 남기는 투자기법)’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가운데 미국 증시(S&P500지수)보다 나은 성과를 거둔 건 전체의 11%에 그쳤다.

2007년 봄쯤이었던 것 같다. 한 펀드 애널리스트가 “한국에서도 조만간 인덱스 펀드가 유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선진국 펀드 시장은 그렇게 바뀌었다”며 “특히 주식처럼 거래 가능한 상장지수펀드(ETF)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펀드로 들어오는 돈은 대부분 ETF에 몰린다. 수익률 상위권도 대개 ETF다. 성과도 안 좋은데 비싼 비용만 치르는 액티브 펀드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국내 투자자들도 생각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내년에 인덱스 펀드가 전체 펀드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장 큰 알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주식 직접 투자다. 그러나 기대 수익과 반비례해 수익 실현 확률은 낮아진다. 번번이 지는 싸움에 지친 투자자들은 2005년 이후 펀드라는 간접 투자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은 펀드 시장이 또 한단계 진화하고 있다. 액티브 펀드에서 인덱스 펀드로의 대세 변화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아직도 원숭이보다 못한 인간의 투자 실력을 믿으며 테마주를 쫓고 있지는 않나. 고란 중앙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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