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법원이 지난 11일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에 대한 회사측의 ‘직무수행 및 출입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이 국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신문사 출입도 금지됐다. 그러나 이 국장이 13일부터 부산시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본사 출입문 앞에서 출근농성을 이어가고 편집국도 이 국장의 편집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경영진과 편집국 간의 편집권 갈등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국장은 매일 오전 7시30분 석간인 부산일보 출근시간에 맞춰 신문사로 나와 초판이 나오는 오전 11시까지 본사 입구에 책상을 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본안소송에 대비해 재판부의 결정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경영진에 굴복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편집권을 둘러싼 첫 갈등은 편집국이 16일자 신문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연재기고 ‘정수장학회를 말한다’ 첫 회분을 실으려고 하면서 발생했다. 이 기사계획이 보고되자 사측은 편집국장대행을 불러 게재 불가 및 연기 등의 압력을 가했다. 회사의 명예와 관련한 장기 시리즈를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것이 사규 위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한때 사측이 제작국에 인쇄대기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편집국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신문이 정상적으로 발행되긴 했지만 지난해 11월에 이어 인쇄 지연 또는 중단사태가 발생할 뻔한 상황이었다. 이 연재기고는 이 국장이 결정한 사항이다.
두 번째 갈등은 16일 사측이 오피니언면에 나가는 부산일보 안내표에서 이정호 편집국장의 이름을 빼야 한다는 공문을 편집국에 보내면서 발생했다. 사측은 편집국장 유고 시 직무대리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편집국은 징계의 효력을 법원에서 다투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앞으로 사측이 후임 편집국장 추천을 노조에 요구할 경우 편집권 갈등은 더 격화될 전망이다. 사측은 가처분 결정이 나기 전인 지난달 말 이미 편집국장 궐위에 따라 노조에 차기 국장 추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노조는 사측이 후임 편집국장 추천을 요청하더라도 본안소송 확정 판결 전까지는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호진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편집권 독립보다는 정수장학회 눈치보기에만 바쁘다는 게 드러났다”며 “편집권을 침해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정수장학회 등 9개 법인의 정기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실태조사는 2005년 이후 7년 만이다. 언론노조 등이 지난 2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총급여가 과다하다며 감사를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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