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존재 부정하는 계약직 기자 양산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기자라는 직업은 전문직으로 보기엔 결격사유가 많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여느 전문직처럼 특수지식을 검증하는 시험 같은 보편적인 자격요건은 없다. 고용 형태도 당연히 언론사에 고용된 그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다. 그럼에도 기자가 전문직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애초에 근대언론이 정치권력에 맞서 시민자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며 등장한 이래로, 기자들은 사주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일해 왔기 때문이다. 또 자격시험 같은 원천적인 진입장벽 설정은 어떤 형태로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민들을 위해 진실만을 추구한다는 대전제 아래 철저한 직업윤리가 만들어졌고 이를 배우며 전문적인 기자가 되는 것이다.

공영언론사들의 파업의 와중에 MBC가 무려 20여 명에 달하는 계약직 기자를 뽑겠다고 나선 건 한국의 기자전문직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말이 20명이지 공채기수 3~4년분에 해당하는 대규모 인원이다. 이미 파업 초기에 1차로 계약직 전문기자 4명과 프리랜서 앵커들을 뽑았던 MBC는 장기 파업으로 뉴스제작이 어려워 대규모 채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MBC의 조치가 노동법이 금지하고 있는 파업 중 대체인력 채용에 해당하는 점은 차치하고 우린 이번 채용이 기자전문직의 토대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인지 추가로 주목하고자 한다. 시민들을 위해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직의 대전제가 이번 계약직 기자 채용에선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채용이 내건 ‘1년 계약 후 1년 연장 가능’의 고용조건은 그 자체로 열악하기 그지없고 한국의 중앙언론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치다. 비록 도제식이란 비판을 받지만 한국의 중앙언론사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공채와 수습교육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MBC 측은 이미 충분히 기자훈련을 거친 경력직을 선발하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파업초기 1차로 선발된 MBC의 경력직 기자들은 기자협회 가입조차 불가능한 서울시 산하기관 출신이 포함되는 등 기존에 MBC 경력직 기자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자격요건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굳이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대규모 채용을 감행하는 의도는 뻔하다. 노조에 가입할 수조차 없는 약자들로 경영진의 의도에 충실한 뉴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업 이후 불공정성 시비가 벌어진 뉴스데스크 보도 대부분이 파업 초기에 선발된 소위 ‘계약직 전문기자’들의 리포트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결국 연합뉴스 등 다른 파업언론사들도 경력직 채용을 검토하면서 MBC의 이번 채용은 노조에 대응하는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MBC의 대규모 계약직 채용은 고용의 유연성을 위한 것도, 전문 인력의 수급을 위한 것도 아니다. 비정상적인 MBC뉴스를 외형상으로만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김재철 사장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한 조치이다.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으로 경찰조사까지 받는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려는 김 사장의 의지에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한 개인의 안위 때문에 한국 기자 전문직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그리고 어이없는 비극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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