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3월 ‘애리조나 프로젝트’의 폭로 기사가 일제히 보도됐을 때 미국의 언론인들은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하나가 됐다. 공무원, 정치인, 마피아가 얽힌 부패를 파헤치다 숨진 기자의 못다한 취재를 동료 언론인들이 스스로 나서서 마무리한 것이었다.
2012년 한국,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하는 미디어가 생겨났다. 해직기자와 PD, 현직 언론인들이 함께 만드는 ‘뉴스타파’가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정통 언론이 자기검열로 만들어 놓은 성역을 ‘타파’하는 언론이 탄생한 것이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에서 ‘뉴스타파’의 첫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의 숫자만 족히 100만 명 가까이 된다. 이 수치가 지닌 의미는 크다. 웬만한 신문의 발행부수나 지상파 방송 뉴스의 시청률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누리꾼이 직접 찾아서 접한다는 ‘뉴스 소비의 적극성’ 면에서는 훨씬 강하다.
뉴스타파 이전 한국의 뉴스 수용자들은 이미 ‘나는 꼼수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꼼수’의 인기는 출연자들의 뛰어난 언변보다 다루는 소재와 내용 덕분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거침없는 풍자에 수용자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 수용자들의 인식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과거 언론매체가 희소하던 시절, 국민들은 이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뉴스들을 맹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뉴스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뉴스가 ‘을’이 돼버렸다. 심지어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언론은 채찍질을 당하고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내쫓기는 수난을 겪는다. ‘뉴스타파’와 ‘나꼼수’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심리적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언론 종사자들은 수용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우선 언론사 경영진과 보도 책임자들부터 변화를 읽어야 한다. 국민들이 정통언론을 필연적으로 신뢰할 것이라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국민들이 외면하면 발행부수나 시청률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대안 언론이 대신하게 된다. MBC 총파업으로 생겨난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박수를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뉴스타파 등이 대안 언론의 종착역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고가의 장비와 많은 인력이 없어도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서는 누구나 ‘워치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언론의 변화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정치 분야의 블로그 형태로 출발한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는 월간 방문자수가 3000만 명이 넘는다. 영향력이 급증하자 올여름부터는 하루에 12시간씩 방송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적인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 핵심 중 하나인 기성 언론에 대한 저항은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뉴스타파의 등장은 한국 언론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기자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변화에 대한 불감증에 빠진 그 순간 기성 언론은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 국민들이 언론을 선택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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