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도청 의혹사건과 관련해 KBS는 아직까지도 “그 어떤 도청 행위도 없었다”거나 “어느 누구도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게 녹취록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도청은 없었다”며 불법도청에 대한 법적 책임은 비껴가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불법도청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사법당국의 판단에 앞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KBS가 과연 언론사로서 자격이 있느냐에 대해 KBS 스스로 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도청으로 얻은 정보든, ‘귀대기’로 얻은 정보든 KBS 기자가 야당의 회의 내용을 자사의 수익을 위해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다면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것을 기자의 취재 활동이라고 생각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한 쪽의 비밀이나 정보를 몰래 알아내 반대쪽 이해 당사자에게 제공하는 짓을 우리는 스파이 행위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사가 회사의 수익과 관련한 도청의혹에 연루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KBS 측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해명은 오락가락하면서도 명확하게 아니라고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도청 의혹의 당사자인 한나라당, KBS와 진실을 밝히라는 여론 사이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언론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BS가 생각하는 ‘언론탄압’의 의미란 정말 그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도청 공방의 원인은 따져보면 국민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수신료만을 올리겠다는 KBS 측의 발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KBS는 준조세 성격의 국민이 낸 수신료와 광고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지만 대통령 언론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날아오면서 그동안 공정성은 물론 공영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권력에 비판적인 구성원들을 징계하거나 좌천시키고 G20과 같은 정부의 행사를 일방적으로 홍보해 물의를 일으키는가 하면 특정 정치 세력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사내외 논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행보는 공영방송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움직여 무리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다 보니 기자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병처럼 동원됐다는 말까지 나오는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KBS의 민망한 모습을 접하면서 동시대의 기자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속살을 드러낸 KBS에서 권력에 굴절되고 회사의 이익에 충실해진 오늘날 ‘조직원’ 기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40년 전 미국에선 대통령이 도청에 연루됐음을 폭로해 세상을 바꾼 워터게이트 특종이 있었고, 지금 한국에선 공영방송사가 도청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한창 불거지고 있다.
이번 민주당 도청의혹 사건은 정권과 특정 세력이 장악한 ‘국민의 방송’ KBS를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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