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과학기술은 존재감 없이 주체적 구실을 하지 못하고 종속변수로 머무를 것인가?”
단군 이래 과학계 최대 프로젝트라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사업이 정치이슈에 휘말릴 때마다 국내 언론은 예외 없이 이런 비판을 쏟아냈다.
실상, 과학벨트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드물게 여권 내부 계파별 나아가 여야 간에 정치논리로 무장한 정쟁, 또한 지역 간에 심각한 이해관계의 갈등을 초래한 ‘대표 국책사업’이었다.
그러면 정작 언론은 과학의 존재감 부여에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휘몰아쳤던 세종시 정국의 중심에 과학벨트가 있었다. 작년 12월 과학벨트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입지 선정과 관련해 사실상 ‘원점 검토’를 시사하면서 지역 경쟁구도는 더욱 치열해졌다.
과학벨트가 정치논리로 흘러온 정황은 충분했다. 논란 끝에 대전 입지가 확정됐고, 당초 3조5천억원이던 예산이 갑자기 1조7천억원이나 늘어났다. 과학벨트위원회 위원들도 발표가 임박해서야 이를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서 과학벨트 기사는 종합면 혹은 정치면에 게재돼 과학 자체의 고민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언론 보도에서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는 정쟁에 가려 항상 뒷전이었다.
과학벨트라는 ‘과학기술의 존재감’이 언론지상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보더라도 과학벨트 보도를 하면서 과학기술 이슈의 본질적 부분을 다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벨트 이슈는 ‘그것이 무엇인가’하는 것보다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정략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는 지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후보지 문제만 하더라도 과학벨트 자체에 대한 심층 보도보다는 지역의 논리, 이해관계가 걸린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장만 언론지상에 단골메뉴로 다뤄졌고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했다.
충청권 언론이 대통령의 공약 준수를 앞세우는 반면 다른 후보지였던 경기, 대구경북, 경남, 광주전남, 전북 등 지역 언론은 ‘공정 경쟁’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다.
그래서 입지 선정 발표 이후 중이온가속기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왔을 때 ‘무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도록 했던 것이다.
이번 과학벨트의 핵심 시설인 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는 4천6백억원 규모인데 가속기에 대한 검증 작업은 소홀했다는 방증이다.
정치 이슈인지, 과학 이슈인지 구분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상황을 바로잡는 데 언론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과학벨트가 차기 정권에서 애물단지가 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과학의 진면목을 알리는 언론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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