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각오하고 검사 실명 다 밝혔다"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 펴낸 시사IN 정희상 기자


   
 
  ▲ 정희상 기자  
 
정희상 시사IN 기자는 지난해 2월 초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5년간 검찰에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는 부산·경남지역 건설업자인 한 남성의 제보 전화였다. 이 남성은 회사로 와달라는 정 기자의 요청을 거절하고 대신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에게 보낸 진정서와 자필 편지를 팩스로 보내왔다. 그가 바로 ‘검사 스폰서’ 정용재씨였다. 정 기자와 정씨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오해를 했다. 자료를 주며 자신의 얘기를 써달라고만 하더라. 현장취재를 통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협조는 않고 자료만 가져가라고 했다. 처음엔 언론을 이용하려는 사람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그가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현장취재에 협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오해를 풀었다. 자료도 엄청났다. 1백 명이 넘는 검사에 대한 접대 내역…. 공조가 필요했다. 친한 후배인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를 불러 함께 취재에 나섰다. 그 사이 천안함 사건이 터졌고 취재는 잠시 주춤했다. 3월 MBC PD수첩이 취재에 가세했다. 4월 중순 오마이뉴스, PD수첩, 시사IN순으로 기사가 출고됐고 파장은 컸다. 특히 방송의 힘은 엄청났다.

정 기자와 구 기자는 후속취재를 이어갔다. 내부고발자인 정씨를 보호하기 위해 민변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무료 법률지원도 끌어냈다. 편지도 주고받았다. 이런 오랜 취재 과정을 거쳐 지난 11일 정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책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이 출간됐다. 검사들의 실명을 다 밝혔다. 위험부담이 너무 큰 것 아니냐고 물었다.

“허위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특검과 진상규명위도 거친 사안이다. 현장취재를 통해 검증한 것은 물론이다. 대체로 개인 접대는 드물었다. 최소 2~3명을 같이 만났다. 본인 대질로도 입증할 수 있는 사안이다. 주요 인사들에게 팩스를 보냈고 전화취재도 했다. 반론권도 다 줬다. 반론을 보내온 건 황희철 법무차관 한 사람 뿐이었다.”

정 기자와 구 기자가 책을 쓴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관련 검사들은 변호사 등을 통해 이름을 빼달라는 요청과 함께 해명도 했다. 하지만 설득력이 없어 거절했다. 한 검사는 자신은 발기불능이라 성접대를 받는 게 불가능하다며 한의원에서 뗀 진단서를 가져오기도 했다.

“다른 집단보다도 검찰에 대해 실명보도를 하는 게 힘들다는 걸 느꼈다. 법률가들도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적 사안을 이니셜로 처리하면 흐지부지되기 쉽다. 시끄러울 필요도 있고 감수해야 할 측면도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10년간 한국 언론은 후퇴했다. 진보언론마저도 검찰, 법조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구영식 기자도 절망감을 토로하곤 했다. 하지만 소송이 들어온다면 맞붙어보자는 각오로 쓴 것이다.”

정 기자는 ‘검찰 스폰서’ 문제가 ‘태산명동서일필’에 그쳤다고 말했다. 특검 역시 검찰 내부의 곪은 살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몇몇 검사의 해프닝인 것처럼 마무리됐다. 책은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 개혁이라는 숙제가 또다시 미봉에 그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쓰여졌다.

“책을 읽은 몇몇 검사들로부터 격려 전화를 받았다. 그게 희망이라고 본다. 우리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검찰 내의 양심이 있다. 일부는 억울하다고 한다. 젊은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그들의 사기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선배 세대에서 음으로 양으로 내려오는 조직문화를 바꾸고 떡검, 색검, 견검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