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언론자유를 말살했다. 1970~80년대에 있을 법한 ‘기자유린 판결’을 내렸다. 너무나 충격적인 판결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15부(부장판사 김용빈)는 지난 15일 YTN 해직기자 6명 가운데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 등 3명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방송의 공정성과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노력과 가치를 평가하며 6명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고 했던 1심 판결의 뜻을 정면으로 뒤집은 ‘사법폭거’다.
판결문을 보면 2심 판결은 크게 3가지 중대한 맹점을 지닌다. 첫째,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의견 표명, 주의 촉구, 견제 행위만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특보를 지낸 ‘낙하산 사장’ 구본홍씨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고, 이사회 절차를 방해하고, 일상적인 업무 행위인 출근행위를 방해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논리다.
집에 불이 났는데 소방서에 신고하고 “불 났어요” 하고 점잖게 외치면 그만이지 왜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느냐는 것이다. 이는 언론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이 얼마나 숭고한 가치인지 모르고 내린 판결이다.
둘째, 해고 ‘이후’의 행동을 문제 삼은 점이다. 재판부는 “해직자들이 해고 이후에도 추가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했다”며 “따라서 근로관계 지속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직기자들의 집회 가담 횟수까지 제시하며 이것이 추가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징계를 받았으면 자숙하면서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투쟁에 나섰느냐는 논리다. 법 논리의 기초인 ‘방어권’조차 무시한 어이없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선배들이 수십년 동안 피와 땀으로 지켜 온 언론자유가 말살되고 있는데 ‘자숙’하고 있으라니 참으로 답답한 재판부다. 재판부에 똑바로 전한다. “권력에 빌붙어 월급이라도 챙기겠다는 것이 자숙이라면 명예로운 대한민국 기자들은 차라리 죽음과 다름없는 해고를 택할 것”이라는 며칠 전 한국기자협회의 성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라.
마지막으로 재판부의 표리부동이다. 재판부는 지난 3월18일 회사 측에는 해직 기자 6명 전원 복직을, 해직 기자 측에는 밀린 임금을 받지 말 것을 권유하는 화해권고결정문을 양측에 보냈다. 이는 해직 기자 6명이 YTN에 복직하는 것이 정당하고 YTN의 노사 갈등을 치유하는 방안이라는 것을 재판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사측이 거부해 조정안은 결렬됐다.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번 판결로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이 용인되고 언론사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장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철새 기자’들이 신바람나게 생겼다. 대선 때 줄만 잘 서면 낙하산으로 언론사 사장 자리를 꿰찰 수 있기 때문이다.
YTN 해직기자들은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이다. 부디 상고심 재판부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언론의 중립성과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해고’라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해직기자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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