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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태현 부장, 김성웅 차장, 조현미 기자, 황신섭 기자, 박진형 기자, 유예은 기자. 이종만 기자, 노승환 기자는 연평도 취재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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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고 깊이 있는 취재 위해 불철주야
쏟아지는 기획기사에 때아닌 지면경쟁도<인천일보 사회부>
조태현 부장 김성웅 차장
이종만 기자 노승환 기자
황신섭 기자 박진형 기자
유예은 기자 조현미 기자어김없이 추위는 매섭다. 사회부 기자라면 반가울 리 없는 겨울이 다시 오고야 말았다.
올 겨울은 연평도 포격사태로부터 시작됐다. 인천에서 터진 사상 초유의 상황에 ‘인천’일보의 발걸음이 뒤쳐질 순 없다.
기록적 폭설(1월)과 천안함 침몰(3월), 강화 구제역 파동(4월), 인천대교 버스추락(7월), 태풍 곤파스(9월), 연평 포격(11월)….
올해 인천은 말마따나 숨 쉴 틈 없던 한 해였다. 연평도 사태는 그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부장과 차장, 현장기자를 포함, 인천일보 사회부 8명의 지난 한 달은 폭풍 같았다. 연평도 포격현장과 마을 곳곳, 주민들이 피신한 찜질방, 연안부두, 시내 각 대피소, 국방부, 인천시, 옹진군 등등 다니지 않은 곳이 없고, 듣지 않은 얘기가 없었다.
평화롭던 연평도는 스산한 기운만 남은 무인도처럼 돼버렸다. 주민들이 떠나간 섬 골목골목엔 혹한의 칼바람만 휑했다. 처음 겪는 일에 섬 주민들은 기자의 인터뷰에도 쉬이 응해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섭외한 한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는 짐을 싸고 있었다.
“30년을 살아온 동네인데 떠나는 마음이 오죽하겠소.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살아야 할텐데….”
인천항 근처 한 찜질방에 묵고 있는 연평 주민 수백여명의 하루하루는 말 그대로 피란생활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취재와 기사송고를 마친 아쉬움은 남았다. 기사를 1백장, 2백장 쓴들 그들의 상처와 상심을 무엇으로 달래랴.
더 생생하고 따뜻한, 더 깊이 있는 차별화된 취재는 다 풀 수 없는 숙제와 같다.
인천일보 사회부는 편집국에서 남다른 팀웍을 자랑한다. 개개인에겐 자부심이고, 팀에겐 활력이다. 선·후배가 짝을 이루어 만들어내는 기획기사는 최고의 무기다.
두 편 또는 세 편짜리 기획이 겹치다보니 게재일을 놓고 부서원끼리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기 일쑤다.
수습을 밟고 있는 조현미 기자는 부서의 ‘비타 500’이다. 남다른 순발력과 적극성은 주변 동료에게 언제나 ‘귀감’이다.
막 수습을 끝낸 유예은 기자는 철저하고 집요하다. 말 없는 성격에 차분한 외모로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날카로움을 지녔다. 동기 박진영 기자는 대학 교지 편집장 출신답다. 사안을 넓게 보려는 몸에 밴 통찰력이 눈에 띈다.
부서의 허리 격인 황신섭 기자. 사건 통이다. 오랜 경찰출입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력에서 나오는 현장중심 기사는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중간 다리 역인 노승환 기자. 까칠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한 번 문 먹이는 절대 놓지 않는다.
다음은 이종만 기자다. 자칭타칭 ‘리버럴리스트’로 불리는 자유분방주의자(?)다. 그만큼 유연하다는 뜻이다. 후배들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김성웅 차장과 조태현 부장은 20여 년 ‘인고’의 세월을 겪어낸 우리의 형님이고, 삼촌이다. 서슴없이 말문을 터주는 덕에 후배들은 때론 격의없이 ‘들이대기’ 일쑤다. 위계질서보다 취재능력이 우선이다.
인천일보 사회부 현 멤버가 뭉친 건 지난 7월 초다. 정기인사 때 각 부서에서 1~2명씩을 차출해 새로운 진용을 짰다.
‘최강 사회부’가 우리가 내건 모토였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고 지역 경쟁지에 ‘물 먹기’도 여러 번이었다.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력과 경험에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우리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부서원 누구도 의문을 달지 않는다. 하루하루 부딪히는 현장경험이 우리의 최대 자산이다. 특종이 별거랴.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 인천일보 사회부 파이팅! <인천일보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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