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잔칫집이다. 세계를 이끈다는 20개 나라의 정상들이 서울을 찾았고, G20을 치르는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듯하다. 그러나 ‘남의집 잔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G20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동원됐고, 도둑잡는 일선 경찰들까지 지방에서조차 모조리 올라와 5만명 경찰력이 행사에 투입됐다. 강남에서는 공무원과 시민들 5만명이 매일 아침 동원돼 거리 청소를 하고 있고, 서대문구는 회의기간인 11~12일 이틀 동안 냄새 날까봐 쓰레기 소각장 가동까지 중단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회의장인 삼성동 코엑스 주변 반경 2km는 3중으로 경호선이 설치됐고, 일반인들의 출입은 원천 봉쇄됐다. 온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보지 않고서는 이런 과잉 경호는 불가능하다. 마침내 정부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유사시 군 병력까지 동원하도록 했다. 80년대 군부독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블룸버그 뉴스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보도했다. “G20에 대한 열광이 서울을 장악해 어린이들까지 환율을 숙제로 낼 정도이다.” G20에 올인하는 한국의 모습을 비웃는 내용이다.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했다고 길거리에 백만 인파를 동원, 붉은 꽃을 흔들면서 열광하도록 강제하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모습과 비교해 남쪽에 자리잡은 한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정부의 G20 올인에는 이를 방조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현재 우리 언론 상당수는 G20의 실상에 대한 합리적 진단과 분석은 뒤로 한 채 정부의 G20 찬양에 동조하고 있다.
KBS노조는 KBS의 G20 관련 특집 프로그램들이 TV의 경우에만 60여 편, 무려 3천3백분이 편성돼 있다는 비판 성명까지 내놓았다.
신문들 역시 G20의 실영향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기사는 몇몇 신문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무책임한 언론 태도를 마주한 국민들은, 그저 또 하나의 국제행사를 지켜보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있다.
G20이 성공적으로 치러져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국제적 관계 속에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겐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아야 생존할 수 있고, G20은 그를 위한 소중한 기회다.
그렇지만 모든 국민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고,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이것이 과연 21세기 민주주의 정부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새로운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대학생과 시위대가 주변에서 시위를 하면 좀 어떤가. 과연 그걸 보면서 다른 나라 정상들이, ‘한국 경찰은 뭐하냐’고 비판할까, 아니면 ‘한국도 이제 찬성과 반대가 공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구나’ 하고 생각할까.
삼중의 바리케이트를 쳐놓아 회의장 주변에선 서울 사람 코빼기도 볼 수 없다면, 다른 나라 기자들이 과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하고 의심하지는 않을까? 평양 취재를 갔던 당시, 북한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만나고, 온통 북한 기관원들만 만나고 돌아왔던 과거 기억이, G20을 앞둔 지금 서울의 모습과 자꾸 겹치는 건 왜일까? 좀더 의연하고 자신감 있게 준비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게 하는 게 진정한 국격이 아닐까? G20을 개최한 국가의 국격에 맞는 정부와 언론의 책임있는 자세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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