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민주화 갈 길 멀어…끝내는 이길 것"

[특집 방담] 해직 선후배, 한국언론을 말하다



   
 
  ▲ YTN 해직 2년-해직기자 선후배 특별 방담이 1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참석자
△정동익 전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장(1975년 동아투위 사건으로 해직)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회 대표(1980년 사전검열 제작거부로 해직)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기협 특임위원장(2008년 YTN 공정방송사수투쟁으로 해직)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2010년 진주MBC 통폐합거부투쟁으로 해직)


2008년 10월6일, YTN 기자 6명이 해고된 지 꼬박 2년째 되는 날이다. 기자협회보는 YTN 해직 2년 평가와 향후 대책 등을 알아보고자 해직 선후배 특집 방담 자리를 마련했다. 1975년 동아투위, 1980년 신군부, 2008년과 2010년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해직된 기자 4명이 시대를 초월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일 한국기자협회에서 한국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언론계 내부의 ‘순치’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을 했다. 다음은 방담 내용이다.




   
 
  ▲ 정동익 전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장  
 
정동익=
동아투위 관련 재판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좀전에 동료들이 모여서 일제 치하가 36년인데 똑같은 기간을 해직상태에 있다는 말을 나누고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고승우=저 역시 해직된 지 30년 째 입니다. 80년 해직기자 막내조차 벌써 환갑을 지났습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구나 생각하니 소회가 남다릅니다.

현덕수=동아투위나 80년 신군부 해직기자이신 두 분은 당시 시대적 모순에 온몸으로 맞서셨습니다. 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해직 생활을 해 오셨기에 이제 2년이 막 지난 저희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겁니다. 그럼에도 저희 같은 해직기자들이 생겨나는 현실은 여전히 민주화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정대균=저는 해직된 지 오늘로 65일이 됐습니다. 아직 단 한번도 해직기자라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어제 방담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서야 제가 해직기자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저 역시 좀더 상식적인 사회를 갈망합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렇게 대화가 안됐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MB정권 교활하게 탄압”
정동익=언론계에 40여 년을 있었는데, 권력의 속성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진정한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된 것처럼 얘기하지만, YTN과 MBC 후배들 해직사유를 보면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배들이 과거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하고 있죠. 우리 때는 권력과 싸우면 됐습니다. 눈앞에 적이 보였죠.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 정권은 무지막지하고 무식하게 탄압했지만, 지금 정권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교활해졌습니다.



   
 
  ▲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회 대표  
 
고승우=
민주화된 사회에서 해직이 자행되고 또 상당기간 지속되는 것은 당사자와 주변에도 고통이고, 또 전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동일합니다. 문명사회의 가장 야만적 행태가 바로 제 4부라 불리는 언론인 강제 해직입니다. 거기에 자본권력과 자본권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권이 득세했으니 싸움이 점점 힘겨워질 수밖에 없지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절망적이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현덕수=선배들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신군부의 강압적인 탄압으로 해직되셨지만, 저희는 선거로 뽑힌 정당성 있는 정부로부터 해직을 당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해직이 지속되는 것은 1980년 이후 처음입니다. 거의 30년이 지나서 왜 이런 흐름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합니다.

정동익=현 정부가 무늬만 민주주의이기 때문이 아닐지요. 과거 독재정권에 기반했던 세력들이 아직 정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또 과거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말합니다. 차이가 없다고 봐요. 현 정권과 과거 정권을 주도하는 사람들도 같은 맥락에 있는 사람들이죠. 모든 면에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진척됐지만 현재는 민주주의도 그렇고, 언론자유도 그렇고 모든 게 거꾸로 흐르고 있습니다.

고승우=언론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사고영역보다는 자본과 정치권력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급급한 인사들이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언론사 사장으로 있지만 언론의 미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죠. 사회적으로 보면 이 정부 들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좌빨, 친북으로 몰아붙이면서 논의는 중단되고 토론문화도 없어졌습니다. 이런 공안정국이 언론에는 치명적이고 반대로 자본과 정치권력에는 도움이 되겠죠. 이런 것들이 언론자유에 영향을 미쳐 해직이라는 매우 비이성적인 형태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  
 
정대균=
저는 군사정권을 포함해 과거 정권들이 어느 정도 언론보도에 겁을 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정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판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를 않아요. 조·중·동에 어떤 기사가 나왔는지만 청와대에 보고된다는 말도 있듯 다른 목소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일한 문제는 서울과 진주 MBC에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아무리 비판 목소리를 내도 사장들은 듣지 않습니다. 보도도 과거 땡전 뉴스 식이죠. 여기 두 분과 선배들이 피땀으로 이뤄놓은 언론자유를 우리가 30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습니다.

정동익=아닙니다. 우리가 미안하죠. 우리 시절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대물림시켜 후배들까지 고초를 겪게 했으니, 선배 입장에서 난감하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언론공동운명체 의식도 사라져”
현덕수=선배들에겐 부끄럽지만, 낙하산 혹은 정권과의 관계가 뻔한 변형 낙하산을 언론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정권의 비민주적 속성 못지않게 현재의 언론계 내부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낙하산을 용인하려는 움직임이 언론인들 속에도 있다는 점이죠. 언론사가 실력으로 국민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의 관계를 통해 언론사 부흥을 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권에 접수된 언론사나, 그렇지 않은 언론사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부의 속성을 떠나 언론인 직업 윤리의식을 정리해 가는 것이 저희에게 남은 큰 숙제입니다.

정동익=과거 언론인들은 언론인이라는 게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언론인이 되려고 했는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지만 요즘 후배들은 대부분 봉급쟁이에 만족하는 것 같아요. 선배들보다 치열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합니다. 과거에는 지사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했는데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요. 자사이기주의로 경쟁사에 이기려고 하고, 언론계에 무슨 문제가 나타나도 공동으로 힘을 모아 싸우려고 하지 않지요. 우리 회사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니 권력 가진 쪽에서는 우습게 보는 것이죠.



   
 
  ▲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  
 
고승우=
정 선배 말대로 과거 노태우 정부가 그랬듯 이번 정부 역시 경쟁을 심화시켜 자사이기주의를 부추기고 반대로 공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언론시장을 확대 개방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넓히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늘도 있죠. 문제는 종합편성채널 정책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가 노태우 정부처럼 그 그늘만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북이 등 찢어지듯 나뉘어 ‘언론 공동운명체’라는 의식도 사라졌죠. 정치와 자본권력이 악용하기 쉬운 구조가 된 겁니다.

정대균=MBC의 경우는 과거 지역사장을 평가할 때 방송콘텐츠의 질과 노조와의 관계 등을 중점적으로 봤는데 지금은 경영실적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을 봐도 정론을 펴는 언론은 불이익을 받고 사이비 기자들만 득세하는 모양새입니다.

정동익=언론계 자정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 우리 불행의 씨앗입니다. 일제에 부역하며 내선일체 등을 강조했던 앞잡이 언론인, 전두환 찬가 등을 부르던 독재정권 앞잡이 언론인들을 정리하지 못했지요. 한번은 정리하고 가야 합니다. 반발이 거세겠지만, 반민주 언론인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에 남기고 귀감을 삼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권력 편에 서서 앞잡이 노릇한 기자들은 호의호식하고 언론인 본연의 자세로 싸우던 기자들은 해직돼 길거리를 헤매게 하고…. 언론계 남아 있는 후배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해직기자들이 힘을 모아 반민주 언론인 사전 편찬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덕수=언론종사자들이 자신의 직업적 윤리에 맞게 공영방송, 공정보도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YTN이나 MBC가 투쟁을 했고, KBS도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공영방송 내지 공정보도를 지키기 위한 열망이 예전과 같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부의 끊임없는 노력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해직의 고통 가족이 더 커”
정동익=해직되면 주변에 성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좋은 일하느라 애쓴다는 격려도 받지요. 그러니 본인은 견딜 만합니다. 그런데 가장 피해자는 가족이에요. 가족들이 해직의 아픔을 제일 먼저 피부로 느끼거든요. 우리 때는 정권이 취직조차 못하게 막았어요.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노숙하고 시장에서 장사하고 쌀 떨어져 꿔먹고 돌반지 팔고 그랬죠. 가족들이 견디기 힘들어요. 무조건 잘해줘야 합니다. 대개는 젊을 때 해직되니까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저도 지나고 보니 가족에게 전혀 마음을 못 썼어요. 또 해직자 본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 동료 1백13명 중 15명이 세상을 떠났어요. 상당히 높은 비율이죠. 그래서 우리가 옳은 일하다 잠시 고초를 겪을 수는 있지만 끝내는 이긴다는 낙관적 생각을 해야 합니다.

현덕수=말씀을 듣고 보니 가족들의 고통을 당연히 생각하고, 아픔을 제대로 돌보는지 않은 것 아닌가 반성이 되네요. 집사람이나 애들에게 굉장히 고맙고요. 동료 해직기자 중 한 분은 두 달 전 배우자가 아파 큰 수술을 받고 지금은 다행히 회복되셨는데, 그런 걸 봐도 가족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것 같습니다.

정대균=저도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징계위 재심이 끝나고 해직 통보를 받았는데, 자꾸 꿈속에 절 해고시킨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러더군요. 식구들은 예전엔 안 그러더니 이젠 먼저 장난도 치고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고승우=80년 해직기자는 워낙 수가 많아서 불행한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심리적 타격으로 큰 병에 걸리고, 생계 문제로 이혼하고…. 당사자는 자기만족 내지는 투쟁심 때문에 지탱했지만 가족은 다른 얘기죠. 또한 지금의 해직기자들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비해 민주화된 사회를 살고 있고 그런 사회에서도 불이익을 받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외감, 고적감 같은 것이 깊을 겁니다. 해직 당사자에 대한 심리적 치유도 필요하고 또한 해직기자들의 뜻에 동조하고 투쟁하는 집단을 보듬는 것도 언론계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해직사태 제대로 보도하기 운동해야”
정동익=집회 시위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보도하기 운동이 정말 중요합니다. 각 언론인들이 한 줄이라도 보도하려고 노력해야지 집회 한번 나간 걸로 투쟁했다는 심리적 만족을 얻으려 하면 안됩니다.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 당시에 우리는 매일 저녁 모여서 방송과 신문에 어떤 기사가 누구의 압력으로 누락됐는지 지적하고 항의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면과 방송이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현장의 언론인들도 한줄이라도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주길 바랍니다.

고승우=요즘 전 자주 보던 방송뉴스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죠. 보도 일꾼으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동료 기자, 언론사, 언론계, 국가와 전체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언론부문의 보도 감시기능을 소홀히 하면 언론 스스로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꼭 보도해야 할 것은 보도해 사회 정의를 바로잡아 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시민사회의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단히 향상됐습니다. 수많은 촛불시민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제도권 언론도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현덕수=YTN은 해직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건이 터지면 가장 먼저 속보를 전하는 매체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돼 있습니다. 하지만 해직 사태를 겪으면서 그런 점이 많이 약화됐다고 보입니다. 돌아갈 회사가 창대할 회사여야 하는데 생기가 많이 빠져 있는 느낌이 듭니다. 낙하산 투쟁 당시의 활달함으로 언론사로서 이전의 명성을 되찾아 줬으면 합니다. 낙하산 반대 투쟁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면서 YTN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료들이 노력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갈 회사가 더 의미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대균=자신 있게 말하지만 진주MBC를 지역민들에 돌려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힘을 내면 그날이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진주MBC가 무너지면 안됩니다. MBC 기자들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정리=민왕기 기자 [email protected]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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