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라는 김재철씨가 결국 MBC의 사장 자격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엄기영 전 사장의 사퇴를 촉발했던 방문진 이사들의 일방적인 이사 선임을 취소하겠다는 김 사장의 타협안을 노조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 KBS 사장에 이어 공영방송 MBC의 사장에도 대통령의 지인이 임명됐다.
MBC의 사장마저 대통령의 측근으로 채워진 직후인 지난 일요일.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오후 6시부터 밴쿠버올림픽선수단 환영대축제라는 이름의 행사를 동시에 생중계했다. 이 행사는 청와대가 선수단을 초청해 만찬을 가진 직후 갑작스럽게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일 저녁 2시간 동안 국민들은 국민의 대화합을 위한다는 이 행사를 반강제적으로 지켜봐야 했다. 채널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내건 관제 냄새 나는 행사를 방송 3사가 동시에 생중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방송 3사 노동조합은 국민들에게 5공화국의 암울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죄송하다면서 사과 성명을 냈다.
이 생방송의 시청률은 KBS 6.4%, MBC 4%, SBS 4.2%로 각각 나왔다. 최악의 시청률을 대개 3%로 잡는 방송가의 셈법으로 보면, 밴쿠버 올림픽의 결과에 열광했던 국민들이 국민 대축제란 이름의 행사에는 반대로 얼마나 냉담했는지가 명확해진다.
정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사, 그것도 시청률이 낮을 것이 뻔한 ‘국민’ 행사를 방송사들이 급조해 동시에 생중계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KBS, MBC의 낙하산 사장 선임과 별개의 일이라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국민들은 오히려 방송 3사의 공동 생방송을 보면서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자랑스러운 선수들의 성취를 정권의 성과와 연계하려는 권력의 의도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정권으로선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온 국민이 모든 주요 TV 채널을 통해 밴쿠버 올림픽의 성취에 반강제적으로 노출되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월드컵과 같은 국제 경기의 성과가 정권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던 기억을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방송 3사의 공동 생중계라는 파격적인 편성이 정권으로선 얼마나 흡족했을 것인가. 하지만 결과는 온 국민의 철저한 외면과 반감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모를 것 같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방송 3사의 공동 생방송에서, 80년대 ‘국풍 81’ 행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집권 이듬해인 81년, ‘국풍’이란 이름의 대규모 축제를 열어 연예인을 내세우고 시민들을 동원하는 대규모 관제행사를 열었다.
당시엔 1천만 명이란 인원이 참여하는 겉으로는 성공적인 행사였지만, 지금은 MB정권의 ‘여론몰이’의 전형으로 기록될 뿐이다.
정권은 MBC마저 장악해 손쉽게 여론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시청률이 보여주듯이 국민들이 바보처럼 속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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