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 김인규씨가 공영방송 KBS의 사장으로 임명됐다. 11명 가운에 7명이 여당 추천 인사로 구성된 KBS 이사회가 김인규씨를 사장으로 선임했으니 여기에 누구의 의중이 반영됐는지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국민이 낸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를 이끌게 될 김인규씨는 이명박 후보 캠프의 방송전략팀장 출신이다. 김씨는 당시 방송에 비치는 이명박 후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임무를 담당했다. 그 공로로 당선 뒤에는 대통령 언론보좌역까지 맡았다. 대통령의 핵심 인물이라는 평가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던 인물이 공영방송을 이끄는 건 정치적 중립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당연한 논란 속에, 작년 3월 KBS 사장 공모 당시엔 응모를 포기한 전력도 있다. 그런 그가 불과 1년 반이 흐른 지금, KBS의 사장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지난 2003년의 서동구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직기자 출신의 서동구씨는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KBS 사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론고문을 지낸 전력이 있으니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논란 속에 취임 8일 만에 사퇴했다. 그런 식의 사장 인사는 안 된다는 것은 이후 상식이 됐다. 권력과의 특수 관계를 발판으로 공영 방송사 사장이 된 인물에게 언론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근본 상식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어도 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식을 재차 확인한 것이 최근 법원의 판결이다. 법원은 특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이 언론사의 사장이 되는 데에 반대한 행위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YTN 기자들의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 언론사 사장을 반대하는 것이 법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원의 판결로도 확인됐듯이, 행정절차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정연주 사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뒤, 그 자리에 선거 캠프 특보 출신을 내세운다는 건 청와대가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 일이나 다름 없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법과 상식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선거로 탄생한 합법적인 정권이 차마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김인규씨의 사장 선임에 대해 각계의 우려가 잇따르는 가운데 KBS 노조가 총파업 찬반투표를 벌이기로 했다. 총파업 찬성 시 YTN 사태에 이어 또 한 차례의 저항과 탄압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 저항과 반대가 만만치 않은 논란 투성이의 4대강 사업 기공식이 열렸고,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의 취임을 앞두고 있는 KBS는 이를 생중계했다. 공영방송 KBS의 최소한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언론을 장악해 비판 여론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정통성을 갖추지 못했던 군사독재 정권들이나 쓰던 방법이다. 비판을 싫어하는 건 비판을 통한 개선의 기회를 외면하는 유아적 정권의 행태와 다름없다. 정권의 업적은 정권이 끝난 뒤 역사가 평가한다. 정권과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권에 장악당한 언론의 찬양은 역사의 평가가 아니다. 몸에 해로운 사탕발림이다. 청와대는 언론 장악의 망상을 거두고 진정한 정권의 성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 근본을 되새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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