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기획위에서 만든 ‘차기 대권전략 문건’을 보고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작년에 여권으로부터 언론 장악을 위한 문건이 흘러나왔을 때 “대통령 하야” 운운했던 그들 아닌가.
<향후 주요 업무 추진 계획 - 10대 핵심과제 중심>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 7번째 항목은 적대적 논설진 비리 등 문제점 자료 축적과 우호 언론그룹 조직화 방안 전략을 세울 것을 적시하고 있다. 바로 윗 항목에선 2002 대선 대비 사전 준비작업으로 여권 핵심부의 비리 관련 자료를 수집할 것도 빼놓지 않고 적어두고 있다.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며 웃다 보면 문득 잊고 있었던 상처가 쓰려온다. 1980년 언론인 해직 사태를 몰고 온 이른바 ‘K공작 계획’. 한 보안사 준위가 그 상관들의 지시를 받아 ‘어지러운 시국을 수습하기 위한 충정으로 작성한’ 그 계획에 의해서 신군부에 비협조적이라고 일방적으로 찍힌 언론인들이 펜을 뺏기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문건에 대해서 ‘실무자가 작성한 수습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우리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닌데 그걸 믿겠는가. 기획위에서 그걸 만든 것은 분명 80년대 그 이 모 준위의 언론대책반처럼 ‘한 건’ 해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의 현재 분위기가 이렇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언론 자유고 인권이고 없다. 오로지 내 편이냐, 적의 편이냐 하는 편가르기만 존재할 뿐이다. 이회창 총재가 입만 열면 외치는 상생의 정치가 바로 이런 것인가.
우리는 이번 문건을 대하며 일부 신문 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언론이 이런 음모나 공작의 대상이 됐다는 것에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정치인 아무개의 장학생이니, 권·언 커넥션이니 하는 시중의 루머들은 그냥 나오지 않은 것임을 자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권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의 공작 전략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인들의 비리를 조장하고 자료를 모아서 그걸로 협박해 제 편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권은 그런 음험한 야심을 뿌리부터 잘라야 할 것이다. K공작을 성공시킨 그 군사정권이 국민과 역사로부터 받는 평가를 한 번 상기해 보라.
여권도 이번 일을 정치 공세의 호기로 삼기보다 성찰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한 건 해보려는 ‘꾼’들이 있기 마련이어서지금이순간에도 누군가 내밀하게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이용하려는 정파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그것만이 일부의 권·언 유착으로 인한 수치심을 씻고 언론자유권을 지키는 길임을 아는 까닭이다.
우리의 주장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