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메일을 뒤졌다. MBC PD수첩의 한 방송작가의 개인 이메일이다. 그것도 무려 7년치를 들여다봤고, 촛불시위가 뜨거웠던 지난해 상반기 이메일을 집중적으로 뒤졌다고 한다. 작가 개인의 생각과 사생활은 검찰과 보수언론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졌다. 누군가 내 이메일을 샅샅이 뒤져봤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다. 믿기지 않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검찰은 수사라는 미명 아래 최소한의 개인 인권과 윤리를 무참히 짓밟았다. 여기에 보수언론의 펜은 검찰의 장단에 맞춰 춤까지 췄다. 검찰의 천인공노할 패륜행위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는 죽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남경필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검찰의 이메일 공개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수사의 본질은 PD수첩의 왜곡보도 여부이지 제작진의 평상시 대화, 정치적 선호, 이념적 성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광호·이정현·홍정욱 의원 등 한나라당의 적지않은 의원들이 검찰의 이메일 공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검찰이 이처럼 개인 이메일까지 뒤지는 무리수를 왜 뒀을까. PD수첩의 왜곡보도에 대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작가 개인의 정치성향까지 파악해 ‘평소 반정부적 생각을 가진 작가가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식이다. 군부독재정권시절 대공사건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앞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1억원짜리 명품시계니, 미국의 호화저택이니 하는 말들을 언론에 슬그머니 흘려서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모욕을 주고 도덕적 흠집을 내게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권력기관인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의해 시작됐듯이, PD수첩 수사 역시 정부(농림수산식품부) 관료의 형사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검찰에 고소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면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칼자루를 휘두른다. 이 정부 들어 한결같이 이런 식이다. 지난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해임시킬 때도 국세청, 감사원, 검찰의 호흡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PD수첩 수사는 검찰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명예훼손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죽하면 애초 이 사건의 실무책임자였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기소 불가능’을 선언하고 검사직에서 물러났겠는가.
언론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했으면 정부는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고 자숙하는 게 도리다.
이번 MBC PD수첩 수사 검사들에게 묻고자 한다. 그렇게 자신있고 당당하다면 검사들 이메일부터 공개해 보라. 할 수 있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이번 사건을 되새겨봐라. 언제까지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릴 참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을 위한 검찰, 인권검찰로 거듭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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