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해 최근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반발에 부딪쳐 돌아갔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다시 한번 공권력이 동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쨌든 이와 관련된 일련의 검찰 수사는 한국 사회의 근대적 가치 구현에 중요한 갈림길 역할을 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대명천지 21세기이건만 서구로서는 2백년도 훨씬 지난, 이미 상식이 된 가치 개념들이자 일찍이 우리 헌법에도 보장된 이성, 합리, 자유, 정의, 인권 등 기본권으로서의 근대적 가치를 운운해야 하는 것이 2009년 4월 대한민국의 현실인 셈이다.
그러나 마냥 실망할 이유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에 주어진 기회다. 틈날 때마다 법치주의를 부르짖으며 실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명박 정부에 과연 최고 상위법으로서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하는 구체적 의지가 있음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사안은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핵심 존재 의의이자 권리와 의무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신문, 방송 언론들이 권력과 관계 맺는 방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언론 보도 내용 자체만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법적 수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은 여타 언론 매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와의 강한 연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는 끼리끼리 해먹자는 동업자 의식과는 별개의 것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 혹은 좌우 편가르기와 별개의 것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국가 권력의 시도가 성공으로 마무리되고, 나머지 언론들이 이에 동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방조한다면 도대체 국민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겠는가.
이른바 보수언론들은 PD수첩 비판에 한몫을 단단히 거들고 있다. 물론 이는 당연히 보도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각 매체별로 관련 의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혹여라도 ‘정부 정책 비판과 무관한 검찰 수사’라고 둘러대거나 ‘PD수첩은 당당하게 검찰 수사에 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견 그럴싸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적 비웃음과 공분을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언론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언론 보도에 대한 공권력 개입을 당연시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적인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론으로서 근원적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한다면 국민과 역사의 싸늘한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PD수첩 보도에 씌워진 혐의는 농림부 장관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은 반드시 보상받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PD수첩의 보도가 어떻게 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정부 정책과 관련되지 않은 평범한 개인이 명예훼손 고소가 있어도 앞으로 이렇게 압수수색에 공권력을 들이댈 것인지 궁금한 것 또한 사실이다.
PD수첩의 보도가 오보인지, 아닌지, 의도적 오역이 있었는지 여부는 굳이 공권력이 따질 이유가 없다. 언론계 내부에서, 독자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시민사회 내부에서 충분히 따져야 할 사안일 것이다.
정부기구가 보여주는 행태와 달리, 근대적 가치를 이미 구현한 성숙한 시민사회는 굳이 서슬퍼런 공권력의 잣대를 들어대지 않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반성하고 혁신할 충분한 지혜와 힘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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