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청계천 단상에 올라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을 때 온 국민은 환호했다. 그가 ‘섬기는 정치’를 한다고 말했을 때 국민도 그를 섬기고자 했다. 그가 소통의 정치를 부르짖을 때도 그와의 ‘단절’은 전혀 예견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출범 1년이 된 지금 이 나라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품는 것은 사치가 돼버렸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2월 출범과 동시에 국민과 소통 약속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오히려 그의 측근 인사들을 방통위원장, KBS 사장, YTN 사장, 코바코 사장 자리에 포진시킴으로써 ‘불통’의 장막을 공고히 했다.
그 장막 앞에서 애원하던 국민과 그 상황을 알리려던 방송사에 대해서는 검·경을 앞세워 사정의 칼날을 치켜세웠다. 병든 소를 자신은 먹을지언정 아이들에게는 먹일 수 없다고 거리로 나섰던 ‘유모차’ 아줌마들을 차가운 검찰 조사실로 불러들였고,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위해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던 MBC PD수첩은 6명의 검찰이 달라붙어 조사했다. 또 특보 출신 사장을 보도채널 수장을 받으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된다고 부르짖던 YTN 젊은 기자 6명을 해고했다. ‘국제기자연맹(IFJ)’에서 YTN 기자 복직을 요청하는 특별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통령이 ‘글로벌 딜’을 주장하면서 국가간 소통을 강조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게다가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망각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윗선의 지시를 너무 충실히 이행한 나머지 정치심의에 올인해 스스로 독립성을 내팽개쳤다.
최근에는 정권에 우호적인 신문사와 대기업에 지상파, 보도, 종합편성채널을 넘겨주려는 방송법 개정안과 개인의 통신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등 소위 MB악법을 직권상정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들은 미디어 법안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 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생법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과 언론에 재갈을 물려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 이를 통해 영구 집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을 살인의 충격으로 몰아넣은 강 모씨 사건을 기다렸다는 듯이 용산 철거민 사건을 덮기 위한 위장막으로 활용한 청와대와 경찰의 합작품은 이 정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니 용산 철거민 주검 앞에 사죄는커녕 진실 호도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정권 앞에 불신을 넘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 Politica’에서 정치의 목적은 ‘최고선’에 있고,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정치의 완성을 위해서는 소통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4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4년이나 남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통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성공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그들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왜면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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