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담론도 수용 못하는 사회인가

권력은 말(言語)이다. 누가 말할 자격이 있고 없는지를 구별하는 것, 그리고 말로써 형성된 담론이 공인받을 수 있는지, 못 받는지를 구별하는 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핵심 원리다. 지금까지는 그 판가름을 지식인들이 해왔다. 지식인들은 진리가 자신들에 의해서만 생산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좌파이든, 우파이든 이 대목에 있어서만은 의견이 일치해왔다. 독점된 담론이 지배 담론으로 확산되고 전파되는 데는 언론이 매개체가 된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유포된 담론은 끊임없이 인용되고 논평되면서 결국 진리로 자리매김한다. 

권력에게 다음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의 존재가 불편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미네르바는 그들이 진리를 독점하는 틀을 흔들어놓았다. 기존의 권력 질서가 금기로 간주했던 그런 정보를 생산했을 뿐 아니라 주류 언론의 의도적인 외면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지지까지 획득했다.

사실 경제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올 7월이 아니라 이미 지난해부터 미국 투자은행들에 대한 경고가 이어져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미네르바의 예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부정적 영향을 거론하기도 한다. 주가가 곧 폭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면 그러한 예상 자체가 투자자들의 주식 투매를 유발해 결국 당초 예상대로 실현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원래 경제란 그런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기실현적 예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 경제다. 그렇기에 경제 주체들과 정부는 최악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최악의 자기실현적 예언에 맞설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실현됐다고 해서 그걸 미네르바의 책임이라고 전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비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신뢰하게 할 책임은 우선적으로 금융기관과 정부에 있는 것이다.

일개 인터넷 논객의 한마디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술렁이는 건 그가 너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본질을 외면한 채 미네르바의 입막음에 급급했던 정부, 번번이 뒷북만 친 학자와 전문가들, 무엇보다도 그간의 독점적 담론 생성 기작에 매몰돼 의제 설정 기능을 인터넷에 뺏긴 주류 언론들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미네르바’를 둘러싼 논란에서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과거 지배적 담론의 위치를 차지했던 지식 권력에 여전히 기대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체 담론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던가?

이른바 미네르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 담론을 생산하는 권력이 더 이상 독점되지 못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누구라도 말할 수 있게 하라. 그가 미네르바라 할지라도 말이다.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날기 시작한다”고 법철학 서문에서 말했다.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가 항상 데리고 다니던 부엉이는 ‘지혜’를 뜻하고 황혼은 현실의 사태가 진행돼 결말에 이른 것을 뜻한다고 한다. 어떤 시대나 사건의 참모습은 그 시대의 말미에 가서야 본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일게다.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의 예언이 참으로 되는지, 거짓이 되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비주류의 담론을 얼마나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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