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없어도 된다는 사고부터 바꿔야

이라크전 보도 국제부 기자 좌담

“전쟁 임박해 기자파견 팩트 전달 힘들어”

“오보확인도 외신에서…자괴감 느껴”

“현장파견 기자끼리 네트워크 구축해야”





◆참석자

△오애리 문화일보 국제부 차장

△유성식 KBS 국제부 기자

△이기창 연합뉴스 국제뉴스부 차장

◆사회

△김상철 기자협회 편집국 차장





이라크전이 계속되면서 서구언론 위주의 중계보도와 이에 따른 오보 양산, ‘우리 시각’ 부재 등이 국내 언론보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본지는 신문·방송·통신사 국제부 기자 3명을 초청해 이라크전 보도와 취재시스템의 한계, 개선 필요성을 짚어봤다. 좌담회는 지난 4일 오후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이라크전과 관련, 가장 많은 지적이 CNN 등 서구언론 ‘받아쓰기’ 보도의 문제였다.

유성식(이하 유)=그 같은 지적에 동의하지만 이전에 비해 상당히 객관화된 게 사실이다. 개전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논의가 깊어지고 게시판을 통한 피드백이 활발해지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태도가 자리잡았다. 작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시각이 많이 여과된 측면도 있다.

오애리(이하 오)=이전에는 방송이 CNN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는데 이번엔 알자지라 방송의 등장으로 소스가 다양화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사회=독자나 시청자는 개전 초기 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은 후세인 사망설, 51사단 투항설 등 미국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보도가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기존의 문제점을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높다.

이기창(이하 이)=그와 같은 지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나왔던 얘기다. 국제보도는 ‘현장’ 없이도 된다는 시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영어나 아랍어로 된 외신을 인용하는 보도만으로는 진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을 무시하고 1차 소스만 가지고 보도해도 된다는 사고 자체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식의 보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오=전쟁 초기 언론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반면 전쟁 발발 이전에 국내 언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 직전까지 대부분의 국제면 보도를 보면 전쟁과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간을 반영해 왔다. 이때까지 독자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니까 이번처럼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이 확실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메일이나전화 등를 통해 독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이번 전쟁은 워낙 독자의 시각이 비판적이어서 상대적으로 팩트나 전황을 전하려는 기자의 시각은 ‘미국 쪽’이라고 평가받는 측면도 있다.

유=방송뉴스의 경우 보여주기 위주이다 보니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해설적인 게 없다. 뉴스 길이도 짧고 발생뉴스 중심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봐서 ‘아니다’ 싶으면 ‘톤 다운’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BBC만 보더라도 해설성 기사가 무척 많다. 시각의 문제를 떠나 제작방식이나 뉴스의 접근방식에 대한 한계가 이라크전 같은 큰 일이 터지면 재확인되는 것이다.

오=전황 초기에는 팩트를 의심할 겨를도 없이 쫓아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미국과 아랍언론의 보도 차이가 너무 크니까 미국과 영국이 제공하는 팩트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이라크가 바로바로 반박하기 때문에 덜하지만, 택할 팩트가 없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내부에서 하루 전황 말고 양쪽으로부터 확인된 팩트만 쓰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소스를 미국과 영국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막상 쿠웨이트를 가보면 국내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전쟁은 미국과 영국사람들의 전쟁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국제뉴스는 현장에 가지 않고 만들어서 보도해도 된다는 인식을 이제는 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언론환경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중국은 이번 전쟁에 100여명의 기자를 보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등의 언론사들도 기자를 대거 파견했다. 미국이나 영국과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사는 기자 보내는 게 구색용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2∼3일 전에 보내서 바로 1면 톱기사를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니 전쟁취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가 쿠웨이트에 전쟁 발발 한달 전에 들어갔는데 서양기자들은 나보다 이미 한달 전에 와 있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은 그나마 내가 들어온 지 한달 후쯤 전쟁이 임박해서야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는 시각의 차이는 고사하고 팩트 전달조차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현장 접근방식도 그렇지만 우리 언론은 비자 수속 등 행정적 경험도 없는 수준이다.

유=해외취재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큰 틀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조금씩 바꾼다는 생각으로는 바뀔 수 없다.지난해 여름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는데 서방기자들은 아예 거기서 살다시피 해왔다. 우리의 경우 급작스럽게 가서 2주일 정도 취재하다 들어오는 식인데, 이러다 보니 가는 기자들도 부담스럽다.

사회=현장취재가 곧바로 우리 시각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현장취재를 한다고 시각이 극명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한국기자가 현장에 가서 취재할 경우에야 비로소 한국사람의 눈에 비친 기사가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 사실보도를 위해서는 현장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쿠웨이트에서도 아프간전에서 만났던 기자들을 대거 다시 만났다. 서방기자들은 전쟁취재의 노하우가 있는 데다가 충분한 준비를 하고 또 미리 현장에 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있기 때문에 팩트에 접근할 수 있다.

사회=‘후세인 목베기 공습’ ‘민간시설 오폭 줄인 정밀 공격’식의 기사를 보면 현장 취재와 팩트 확보의 어려움 외에 여전히 우리 언론의 관점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기사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번 전쟁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많이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윤리적 차원에서 이 전쟁의 문제점이 명확했기 때문에 공감대는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독자들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앞서 있고 거기서 오는 괴리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보도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오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자괴스러운 것은 기사를 써서 오보라는 얘기가 나와도, 해당 외신에서 오보라고 하기 전에는 오보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그 역시 구조적 문제라고 본다. 일본의 경우 물론 외신을 보지만 일본 기자들은 베끼거나 단순번역하지 않고 자기들 시각에서 기사를 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등으로 마구 쏟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서방보도를 맹신하고 베끼는 풍토와는 다르다. 우리는 외신을 소화하는 전문적인 능력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외신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고상한 척 내보낸다. 이러니까 오보가 생길 수밖에 없고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특파원도 서방 위주이다 보니 서구 편향적인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연합의 경우 카이로 특파원과 워싱턴 특파원이 쓰는 이라크전 기사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현장을 읽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현장에 사람이 가 있어야한다는 것과 파견된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야만 제대로 된 취재가 가능한데 어떤 회사도 두 조건을 다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현지 프리랜서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서방기자들 중에는 프리랜서가 대단히 많다. 보낼 만한 사람이 없으면 전문성 있고 현지 사정에 밝은 프리랜서를 보내는 것이다.

이=쿠웨이트 갔을 때 두 개의 특급 호텔이 이미 기자들로 예약이 차 있었다. 한국에서 간 기자가 세 번째 호텔에서 묵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경제력이나 방송사 규모, 발행부수 등을 고려할 때 구색용으로 전쟁 며칠 앞두고 기자들을 보낸다는 것은 여력이 안된다기 보다 인식이 못따라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동감한다. 이번 전쟁은 모든 전쟁이 우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스 관련 보도만 보더라도 이미 우리와 무관한 ‘다른 나라 뉴스’가 아니다. 세계는 그렇게 움직이는데 우리 언론의 국제의식은 한참 뒤쳐져 있다. 저만치 가있는 독자들과 우리 언론 현실과의 괴리도 크다. 우리 신문의 경우 기자가 전쟁 전 이라크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지만 지금처럼 종군기자가 없는 상황에서 보도의 균형은 반전뉴스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다.

이=이라크전 과정에서 알자지라 통신이 많이 부각됐는데 알자지라 역시 친이라크적이지 객관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반면 우리는 미 편향적이다.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알자지라가 ‘선’처럼 비춰지는데 그것은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아 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유=알자지라의 부각을 보면서 우리도 나름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한다. 지난 2∼3년 동안 국제뉴스에 대한 회사의 인식이나 선호도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쉽게 답이 안 나온다.

이=쿠웨이트에서 외신기자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얘기가 “한국이 더 위험한데 왜 왔냐” “다음엔 한국에서 만나자”라는 말이다. 외신들은 의외로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 반면 우리 언론은 북한 핵 문제를 외신에서 베끼고 있는 수준이다. 이라크전에서 알자지라가 아랍의 시각을 보여주듯이, 외신이 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 국내 언론이 ‘우리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정리=전관석 기자 [email protected] 전관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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