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주·장] 2박3일의 언론 이벤트

정상회담 과열.흥분보도 일관...균형 잡아야

남북정상회담은 끊어진 허리를 다시 잇는 단초를 제공하는 대형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보도한 우리 언론은 어떠했는가?

먼저 양적인 측면에서 보자. 국내 언론은 이번 회담을 55년에 걸친 분단의 벽을 뛰어넘는 계기가 되는 ‘역사적인’ 회담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몸소 공항으로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감격적인’‘감동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신문은 지면의 대부분은 이 ‘역사적’이고도 ‘감격적인’ 이고 ‘감동적인’ 정상회담 소식으로 채워졌다.방송 역시 예정된 프로그램을 대부분 취소하고 24시간 뉴스특보 체제로 들어갔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은 정상회담 생중계를 2박3일동안 밤잠 못자고 꼼짝없이 봐야했다. 이 기간에 정상회담과 관련 없는 사건·사고는 크든 작든 뉴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 사고때 처럼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평양 이벤트로 끌어모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일 게다.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서울공항에서 행한 대국민 보고를 통해 언론들이 너무 상세히 보도해줘 고맙다며 내심 송구스러움을 내비쳤다. 우리 언론의 냄비기질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좌충우돌의 괴팍한 성격에 방탕한 부랑아로 비쳐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활달한 성격과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돌변했다.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문화·예술분야에서도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몰려갔다. 예술혼이 결여된 조악한 집체 창작만이 있을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인식의 아노미를 겪어야 했다.

우리 국민들에게 이토록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은 누구인가? 반공교육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언론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간 우리 언론은 북한과 관련되기만 하면 아무 비판의식 없이 관급자료를 그대로 보도하는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상을 응달과 양달에서 고루 보는 균형된 시각을 포기했다. 그래서 수용자인 국민을 북한에 관해서만은 모두 그늘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절름발이로 만들고 말았다.

2년여전 외환위기로 IMF 관리체제로 들어갈 무렵 경제전반을감시하지못하고 위기를 알리지 못한 책임에 괴로워하던 언론은 지금 찾아볼 수 없다. 예의 냄비언론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이 한반도의 반쪽을 통치하는 괜찮은 지도자로 돌변하고 그 반쪽의 영토에서는 우리가 지키지 못한 전통문화예술의 맥이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사이 우리 언론은 어디 있었는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 책임이 북한 관련 기사 및 프로그램을 재탕, 삼탕하는 식의 물량보도로 때워지는 것은 아니다. 균형 보도와 용기있는 정보전달이 언론의 본령임을 다시 한번 다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편집국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