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건 평생의 고난은 배신하지 않았다. 18일 리영희저작집 출판기념회 도중 부인 윤영자 여사와 손을 맞잡고 파안대소하는 리영희 선생. |
|
|
고단했던 병마가 남긴 상처일까. 그의 오른손은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가슴은 물결쳤다.
18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리영희 저작집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은 가장 치열하게 한 시대를 보낸 이 노(老) 지식인에게 경배를 바치듯 최상의, 그러나 결코 넘치지 않은 찬사로 가을밤을 밝혔다.
기념회 첫 순서로 선보인 리영희 선생의 일대기 영상물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은 그가 당대 젊은이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고백했다. ‘사회에 공헌할 것을 맹서하느냐’는 리 선생의 주례사를 떠올린 유홍준 문화재청 청장, 글 한 줄 한 줄이 바로 전율이었고, 가슴떨림이었다는 미술가 임옥상씨와 여성학자 오숙희씨는 기꺼이 증인이 됐다. 유 청장은 “리 선생의 책을 읽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세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느꼈다”며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으로 지새우던 젊은 날의 밤 속으로 잠시 귀환했다.
리 선생이 걸어온 올곧은 삶의 길동무이기도 했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리 선생께서 앞으로 공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나 더욱 무르익은 지혜가 담긴 말씀을 계속해주시길 바란다”고 아쉬워했다.
‘리영희 1세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의 미국 생활 중 만났던 리 선생을 회고했다. 그는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등 세계적 지식인도 박해나 투옥, 절필을 강요당하지는 않았다”며 “시대의 억압에 의연히 맞서며 걸어온 리영희 선생은 가장 위대한 제3세계의 혁명적 지식인”이라고 말했다.
어두웠던 역사를 함께 밝힌 ‘동지적 후배’들의 사랑을 양탄자 삼아, 그는 불편한 몸도 잊은 듯 단상에 꼿꼿이 섰다. 입을 연 ‘문제적 지식인’의 말은 뜻밖이었다. “나를 핍박해준 분들도 이 자리에 모시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50년 삶을 되돌아보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사람, 사상, 세력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억압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내가 반성하고 자기비판하고, 자기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다면 내 부족함, 결함 때문에 글 쓰고 연구하는 데 있어 경거망동을 했을지도, 내 글은 더욱 위태로워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정신을 창살 속에 가두려 했던 이들은 물론, 이제는 소박한 평화를 허락받을 수도 있을 즈음 찾아와 몸마저 가둬놓은 병마까지 용서하려는 듯 했다. 결국 자신과 운명을 같이 할 이 병은 “50년 동안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좀 더 겸손해지라는, 하늘의 뜻이자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라는 것이다.
절필선언과 함께 그동안 태산처럼 모아온 소장 자료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도 불교와 종교서적만은 남겨두었다는 리 선생의 최근 사유세계를 짐작케 해주는 말이었다.
그는 고서에서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子興, 逆天者亡)’ ‘지족자 불태(知足者 不殆)’ 등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이제는 족(足)함을 깨달을 때이며 이제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집필활동 중단 선언을 확인하는 듯한 말 속에 숙연해졌던 좌중을 그는 한마디로 웃음바다에 빠뜨렸다. “그러니 이제 형무소는 안가겠죠.”
‘리영희 선생 오빠부대’를 자임한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여성운동가 고은광순씨,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씨, 방송인 최광기씨의 독촉 아닌 독촉에 부인 윤영자 여사와 수줍게 입맞춤한 리 선생의 얼굴엔 젊은 날의 고난을 지워버리는 하얀 웃음이 번졌다.
출판기념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달려가 리영희 선생의 손을 맞잡았다. 리 선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화답했다. “우리 시대를 창출한 가장 아름다운 문화재.”(김언호 한길사 대표) “동북아에 파란이 이는 시대, 아직도 우리는 세계를 정확히 보는 그의 눈이 필요하다”(김민웅 교수). 그를 향해 함박 웃음을 터뜨리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이 노 지식인은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입장하는 것이라 믿고 있었다.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