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가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난맥상에 따른 것이다. 노무현 정권과 386은 등식화됐다. 개혁의 지지부진과 민생의 도탄 속에서 개혁·보수세력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된 듯한 386. 과연 386세대는 유효기간이 끝난 것일까. 동시대를 함께 했던 386세대 기자들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회 전반에서 쏟아지는 비판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아픔을 알 것도 같습니다.”
19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한 청년이 할복을 하고 투신했다. “양심수를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말이냐”라는 구호와 함께. 그는 조성만(서울대 84학번, 당시 24세)씨였다. 그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단락에 심장이 출렁이는 이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386세대’라고 이름 붙였다.
한때 새 사회를 끌어나갈 엔진으로 인정받던 386세대. 그러나 지금 386에 대한 비판은 혐오의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근본적인 불신을 숨기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4월 28일자 동아 e TV의 ‘3분 논평’에서 “공부 대신 투쟁에 매달렸던 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 날을 보낸 386 집권세력의 독선과 무능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 논설위원은 지난해 10월30일자 칼럼에서 “386 세력은 20대의 자유·개성·탈이념의 취향과는 반대되는 집체(集體)주의, 국가통제, 큰 정부, 공무원 늘리기, 세금 쥐어짜기, 낭비적 국책사업, 반(反)경쟁, 반(反)시장주의, 반(反)민영화, 반(反)실용주의, 반(反)개방의 구식 좌파의 길로 가고 있다. 그 탓으로 그들은 성장 잠재력을 기죽이면서까지 ‘빚 얻어 생색내는’ 적자(赤字) 포퓰리즘으로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화살은 정치권의 영역을 넘어섰다. 중앙일보는 11일자 ‘강남 논술시장 휘어잡은 386운동권’이라는 기사를 냈다. 386운동권 출신들이 강남 사교육 논술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이 ‘교육양극화를 확산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학생들을 의식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개혁적 언론이나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겨레 손석춘 기획위원은 6월29일자 칼럼 ‘왜 ‘모든 진보는 단결’인가’에서 진보세력이 일부 386때문에 매도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진보는 아직 어떤 권력도 지녀보지 못했다. 현실을 바꿀 어떤 자리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 정권과 일부 386 탓에 진보세력이 싸잡아 손가락질 받고 있다.”
386, 잔치는 끝났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우리 사회에 386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96년쯤이다.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1999년. 조선일보는 당시 ‘한국의 주력 386세대’라는 기획시리즈를 8개월 36회에 걸쳐 내보냈다. 당시 386세대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는 이 시리즈의 머리말에도 나타난다. “…‘386 시인’ 최영미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노래했지만, 386 잔치는 이제 시작입니다. 21세기가 열리면 386세대는 40대에 접어들어 ‘486’이 되고, 머지잖아 한국을 이끄는 중심, 펜티엄급 세대가 될 것입니다.” 보수적인 언론조차 386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높이 샀던 것이다.
이랬던 386세대가 왜 천덕꾸러기가 된 것일까.
먼저 전문성의 부족이 지적된다. 당시 기획 시리즈 팀장을 맡았던 조선일보 진성호 인터넷뉴스부장(서울대 81학번)은 “386이 민주화에 대한 열정은 뛰어났으나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자기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발달한 반면 실무적 지식은 부족한 상태에서 지도자급이 되다 보니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386세대는 너무 빨리 사회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이제는 그리 젊지도 못하다. 서울신문 문소영 기자(이화여대 86학번)는 “40대 중반 정도가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세대인데, 이들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에 권력을 잡았다”며 “정치권의 386세대는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고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주류 사회에 대한 경험이나 준비도 모자랐다. 한국경제 김용준 기자(성균관대 87학번)는 “정치권으로 진입한 386세대들은 주류사회의 사회적 정책 결정 프로세스나, 특히 국민들에게 중요한 경제 문제에 대한 비전에서 준비가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소외된 다수의 약자를 위해 희생했던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기득권 세력이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랴
그러나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386세대 기자들은 이 세대에 대한 지적을 일부 수긍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비판이 일부 언론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 김교만 기자(고려대 82학번)는 “비판이 지나친 감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실증적 근거를 갖고 이뤄진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세대가 아마추어적이라고 비판하려면, 그들이 얼마나 충실한 입법 활동을 했는지, 상임위에서 활동은 어땠는지 등 구체적인 데이터가 제시돼야 한다는 말이다. 대부분 모호하고 막연하게 ‘아마추어적이다’ ‘전문성이 없다’고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김 기자는 이념적 편향성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이 차라리 보수화됐다는 비판은 가능할 지도 모른다”며 “사회가 탈이념시대로 가고 있는데도 보수 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386세대를 이념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386세대도 개인에 따라서 어떤 정치적 이념을 가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세대를 움직인 것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집단의식이다. 한겨레 백기철 기자(연세대 82학번)는 “신군부 시절, 학생운동을 했든 안했든 그 시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집단의식, 시대정신이 있다”며 “그것을 단순히 이념이라고 규정하고 경도됐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386세대의 일부 준비 부족을 지적했던 한경 김용준 기자도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한 집단을 몰아세우는 느낌”이라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치가 정당한 평가없이 일방적으로 매도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의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특정 정파의 이해를 담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며 그 의도를 경계했다.
386세대 정치인들이 과연 정부 여당의 오류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지도 석연치 않다. 열린우리당의 386세대 국회의원은 20명 남짓. 전체 의원 299명의 10%에 못 미친다. 이들은 당의 향방을 결정짓는 지도부가 아니다. 서울신문 문소영 기자는 “이들에게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은 가능할지 몰라도 과연 이렇게 집중적으로 화살을 맞아야 할 자리에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386 기자들은 일부 정치권 386세대의 오류 때문에 전 세대 자체가 매도돼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386세대들은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의를 위해 청춘을 바쳤지만 그늘에 묻힌 386세대들의 열정과 꿈마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아 쓰라림을 감출 수 없다는 분노도 있었다.
386의 시대적 소명 이루었나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 2003년 탄핵 국면의 대반전은 386세대의 힘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참여정부의 오류에 일정 책임이 있더라도, 이제 40대에 이르기 시작한 386세대에게는 남아있는 날들이 더 많다. 실패가 있다면, 교훈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진성호 부장은 “앞으로 386세대에게는 국제 경쟁화 시대에 맞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자기계발에 적극적이고 실용주의적이나 정치·사회에 무관심한 후배 세대와 이 사회를 만들어온 선배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주문도 있다. 386세대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문소영 기자는 “386세대의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80년대 학번들에게 젊은 날 가장 중요했던 것은 민주화와 통일뿐만 아니라 소외계층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등 인간적인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였다. “과연 이런 것들이 지금 이뤄졌는가”라고 그는 다시한번 물었다.
386세대에게 시대가 요구했던 것, 그 정체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김교만 기자는 “386의 정체성은 변화의 주체라는 것”라며 “이제 사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세대가 된 입장에서 이런 정체성에 걸맞는 역할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백기철 기자도 “80년대의 시대정신은 해방 이후 쌓여온 폐단들을 해소해나가는 것”이라며 “그 정신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려면 386세대가 할 일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얻은 경험은 386세대에게는 더 큰 책임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능성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 한 386세대 기자는 힘주어 말했다. “386세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실현이라는 어느 제3세계 국가도 해내지 못한 임무를 떠안고 있습니다. 386세대는 젊은 날 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용기 있는 세대였습니다. 그 열정이 있기에 비관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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