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자사 이기주의 매몰…‘월급쟁이 기자’ 추락
‘公器’ 소명 잊지않는 ‘지사·전문형 언론인’ 그리워
지난 2001년 여름 어느 날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정책대학원의 강의실에서는 KDI 대학원 측이 마련한 ‘언론인 전문과정’ 강의에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유시민 당시 성공회대 교수(현 열린우리당 의원)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반드시 언론탄압으로 등식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자, 얼굴이 벌겋게 된 한 일간지 기자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바로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격렬한 어조로 항의했다. 이 기자는 “신문사 내부 사정도 잘 모르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며 유씨를 거칠게 공격했고, 유씨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모습으로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론했다.
이날 강연은 일부 기자들이 “세무조사는 곧 언론탄압”이라는 소속 회사의 논리에 얼마나 함몰돼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그 날 여러 회사에서 모여든 기자들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주제로 지성인에 걸맞게 객관적 자세를 유지하면서 건전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벌였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 일부 기자들은 대학원 관계자들이 보는 가운데 소속회사의 논리만을 대변하면서 거칠게 말싸움을 벌였다. 기자들은 소속 언론사의 논리에서 조금 벗어 날 정도의 지성도 갖추지 못했는가?
그로부터 4년이 경과한 지금. 우리 기자들은 올 한 해 소속사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았을까? 혹시 우리는 ‘자사 이기주의(自社 利己主義)’에 더욱 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과연 ‘자사 이기주의’라는 우상의 동굴에서 벗어나 언론인으로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집필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러 달 전 한 언론사의 사주가 대사직에 취임한 것을 보았다. 그가 관계에 발을 내딛자, 소속사의 중견 언론인은 “국제 사회에 나가 훌륭하게 업무를 마치시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시옵소서”라고 썼다. 의외의 도청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그는 낙마했고, 조만간 그는 훌륭하게 업무를 마치지 못했지만 회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의 관계 진출과 낙마 과정에서 이 언론사는 사주와 자사의 이익을 철저히 고려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언론은 공기(公器)’라는 언론의 존재 이유는 온데 간데 없었고, 기자들은 회사와 사주의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문제, 신문유통원 지원 문제, 낮 시간 방송 허용 문제, 뉴미디어 시장 진출 문제, 매체 비평 문제 등 여러 현안에서 신문사와 방송사 등에 속한 우리 기자들은 각각 자사이익에 근거해 사안들을 바라보고, 보도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자. 자사 이익에 부합하면 보도를 통해 치켜세우고, 자사 이익과 충돌하면 깎아 내리거나 공격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언론사주 가족에 대해 맹신적으로 우상화하고 그들 일가를 신성시하는데 앞장선 일은 없었는지도 아울러 반성해 보자. 친일 행적의 논란과 정치·경제·언론의 부적절한 유착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주 일가에 대해 객관인 평가는 꿈꾸지도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요즘 우리 언론인들이 ‘자사 이기주의’의 도그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월급쟁이’ 신분에 안주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속사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조직 내에서 살아남거나 출세하기 어려워진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회사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요구하는 노선에 맞추는 것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 더욱 편리하고 유리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행태가 지성인을 자처하는 기자가 취해야 하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길인지 자문해 보자.
월급쟁이에 안주하는 우리 자신, 그리고 자사 이기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진지하게 반성해 보자. 세계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요즘 오히려 구한말의 지사형 언론인, 독재시절의 투사형 언론인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인가.
우리가 보신주의와 자사 이기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공익과 국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무엇인지 진솔하게 고민하는 기개 있고 양심적인 기자들을 보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언론인들이 비분강개를 토해내며 필화를 겪던 그 때 그 시절이 다시 그리워진다.<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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