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은 언론윤리를 준수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 언론인은 스스로 언론사를 떠나는 것이 낫다. 떠날 때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를 구해야 한다. 그게 떠나는 자신은 물론 남은 언론인에게도 떳떳한 모습이다.
언론인 홍석현. 그는 지난해 ‘미디어 오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2위에 올랐고, X파일 사건이 세상에 파문을 던진 직후인 지난 9월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0위안에 들었다.
주미 대사로서 홍 씨의 경력은 X파일 사건으로 보잘것 없는 것이 됐지만, ‘언론인 홍석현’의 경력은 정반대이다. 해외에서 석,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83년 재무장관 비서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을 지냈으며, 이후 삼성코닝 상무와 부사장을 거쳐 지난 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입성했다.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취임한 날을 ‘제2창간일’로 선언한 홍 씨는 조직과 지면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 때 가로쓰기 편집과 조간화, 섹션화를 도입했다. 팀제와 전문기자를 도입해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99년에는 중앙일보 회장으로 맡은데 이어 3년 뒤에는 아시아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으로 등극했다.
홍 前회장이 언론인이 되거나 언론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배경에는 삼성이 있다. 그가 중앙일보 회장까지 오른 이유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큰 처남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그가 중앙일보 사장과 회장을 맡은 이후 언론인으로서 보인 행보에 있다. 우선 이른바 X파일 사건의 당사자인 홍 회장은 지난 97년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2년 뒤에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에서 1천71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조세를 포탈하고 배임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주미 대사로 재직하면서는 지난 2001년 경기도 양주 땅 2천 평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위장 전입한 의혹을 사실로 시인했으며, 최근에는 법원의 유죄판결로 수사가 재개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에도 피고발인으로 연루돼 있다.
그런 홍 前회장의 귀국설이 나돌고 있다. 스스로 들어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검찰에서 두 차례나 소환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자진해서 귀국하든 강제로 끌려오든 홍 前회장은 귀국할 것이다. 다른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X파일’ 사건 하나만으로도 언론인 홍 씨의 위신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다. 차라리 검찰의 통보를 받기 전에 자진 귀국해 X파일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사죄를 구했어야 한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검찰의 소환과 귀국을 지연시키는 것은 영향력 있는 언론인답지 않은 처사이다.
그가 만일 두루뭉실하게 중앙일보로 복귀하려고 한다면 기자들이 나서서 막아야 할 것이다. 그 전에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고, 남은 언론인들에게도 떳떳하지 못하다면 홍 前회장은 스스로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그게 바로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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