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는 한국전력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촛불을 켜고 진행하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전기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서’가 이벤트의 기획 의도라고 하지만 그 동기의 순수성 여부를 떠나 이른바 촛불 국감은 몇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선 전깃불과 마이크를 끄고 촛불로 국정감사를 하는 것이 과연 국정감사 본래의 목적에 걸맞는 행위이냐 하는 점이다. 국정감사는 국정 운영과 관련, 국회가 감사 행위를 통해 견제권을 행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책 대안을 도출하고 입법권을 바람직하게 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전기의 소중함을 알자’는 것이 그 뜻은 가상할지 몰라도 적어도 국정감사에서 벌어지는 풍경 치고는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궁금한 것은 촛불 국감과 같은 이벤트가 왜 생겨나는가 하는 점이다. 촛불 국감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이다. 누구를 향해? 바로 언론이다. 20일 동안 4백61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의 성격상 소수의 의제를 제외한 대다수 의제는 언론에 오르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내실 있는 내용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내용의 충실성보다는 내용의 특이성으로 언론의 눈에 띄는 의원들도 있다. 내용의 특이성으로 승부하려는 의원, 그리고 그 특이성에 뉴스가치를 부여하는 언론, 이 양측의 잘못된 만남은 국정감사를 국정감사답지 않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다. 촛불 국감이야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라지만 그런 잘못된 만남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관행이 바로 ‘일단 터트리고 보자’와 ‘일단 보도하고 보자’이다.
이런 관행 아래서 내용의 사실성이나 완결성에 대한 검증은 종종 뒷전에 밀리고 만다. 정책 국감의 싹이 보였다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일은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실예로 모 의원은 16개 시·도별로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얼마인지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자료는 16개 시·도에서 평준화 고교 1개, 비평준화 고교 1개씩만을 조사한 결과였을 뿐 결코 지역별 진학률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자료가 지역별 명문대 진학률이라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연합뉴스와 일부 신문에 그대로 보도됐다. 또 교원의 징계 사유 중 성(性) 관련 사유가 가장 많다는 보도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또한 국회의원이 낸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이런 사례들은 최종 뉴스 전달자인 언론의 검증 기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론의 허술한 검증은 국정감사의 주 뉴스 제공자인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유발시킬 개연성이 크다. 자신들의 발언이나 보도 자료의 신뢰성을 언론이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는 것이 확인된 이상, 국회의원들도 정책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을 찾는 데 수고를 들이기보다는 기사가 될 만한 것, 특이하고 선정적인 내용을 우선적으로 좇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감사가 그 고귀한 임무를 잃고 언론 플레이의 격전장으로 변질된 데 대한 책임에서 언론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아니, 1차적 책임자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올 국감에서는 비록 굵직한 ‘묻지마 식 폭로’와 그것을 인용한 무책임한 보도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의원이나 언론의 태도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권력형 비리 등 굵직한 폭로 거리가 마땅히 없었다는 데서 그 요인을 찾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즉, 언론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거리’가 나타난다면 앞으로 국정감사에서 언제든 무책임한 폭로 보도가 언론을 장식할 것이다.
때늦었지만 언론은 국정감사와 관련해 대대적인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 최우선적 원칙은 검증의 규율을 확립하는 것이다. 국정감사 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 대해서 사전 검증의 원칙과 절차를 언론사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정감사 기간에 내보낸 보도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사후 검증을 해야 한다. 만약 보도 내용과 실제 사이에서 괴리가 확인되면 언론은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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